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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연극제에서 기억에 사로잡히다

-광주 연극에 바치는 글-

2016 광주 연극제 –3일차, 아트컴퍼니원 <경종비사>

연출/작 원광연

15년여 전, 연극과의 첫 만남은 다소 촌스럽고 약간은 시시했으며, 지금은 연극을 좋아하는 일인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별다른 감회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교복입던 시절부터 대형 뮤지컬을 한 편 보기 위해 몇 달 간 용돈을 모으던 내게, 소극장이라는 곳은 스팟광고나 지면광고에 등장하지 않는 너무나 먼 세계였다. 대학 졸업할 때가 다되어서야 우연히 굴러들어온 연극티켓을 들고 소극장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동구에 장동 로터리 주변 골목 어딘가에서 젊은 남녀 몇몇이 쪼그리고 앉아 구름과자와 담소를 나누던 그 건물이 소극장 입구일 거라는 직감은 역시나 들어맞았다.

낯선 관객의 방문에 사뭇 당황하던 그들의 흔들거리는 눈빛이 연극의 한 장면보다도 기억에 남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이 끝난 뒤 몇 안 되는 관객들은 대부분 아는 사이인 듯 했으니까.) 난생 처음 들어가서 본 소극장 연극은 사실 제목도 내용도 거의 기억나는 것이 없다. 태반이 관계자인 듯 한 그들 사이를 빠져나오는 것도 겸연쩍었다. 그런데 그 겸연쩍은 만남이 이상하게 계속 호기심을 자아냈다. 화려한 무대 앞, 어두운 객석에서 수많은 군중들 중 나 혼자-임을 경험하던 대형 공연과는 전혀 다른 소극장의 어색함이 나를 눈보다 기억에 사로잡히게 했다.

배우 한 명 한 명의 숨소리와 땀, 작은 실수를 했을 때 관객과 배우가 함께 느끼는 긴장감, 닳고 닳은 무대와 소품이 늘어놓는 거짓말들.... 이것은 참 묘한 예술이었다.

2016 광주연극제의 세 번째 작품 <경종비사>의 첫 장면은 기습적으로 시작된다. 조선시대의 임금이 다소 어색한 소품 어좌에 앉아서 고뇌한다. 모두가 훤히 들여다보는 네모난 무대에서 마치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의 명대사를 읊조리듯 비장하게...

“네 손으로 네 혈육을 죽이게 될 것이다.”

“네 손으로 네 혈육을 죽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곧 망나니들이 등장하여 무대를 활보한다. 왕의 존재를 아랑곳 않고 말이다. “전하, 연잉군의 수렴청정을 허하는 어명을 내려주십시오.” 조명이 밝아지고 대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니 사실 망나니들은 왕조의 신하들이다. 마치 꿈을 꾸듯이 망나니들이..., 아니 노론과 소론을 상징하는 네 명의 배우들이 무례하고 천한 의상을 너풀거리며 경박한 표정으로 왕을 재촉한다. 창백한 얼굴에 연약해 보이는 왕의 대답은 별로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때는 1720년대, 아버지 숙종은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 장씨를 폐출하고 사사한 후에도 계속 아들을 견제하고 의심했으며, 최숙빈의 아들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려고 시도한다.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극에 달하고 경종은 여러 번의 위기가 있었으나, 숙종 사망 후 결국 국사를 이어 조선 20대 왕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복동생 연잉군을 견제하고 의심해야만 살아남는 또 다른 역설에 봉착하고 만다. 그것은 연잉군의 입장 역시 마찬가지일 것.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죽을 것이다……. 연잉군의 대리청청을 둘러싼 당쟁, 그리고 후사가 없는 경종을 독살하려는 지속적인 시도, 역모와 사사(賜死), 신임사화(辛壬士禍) 등 핏빛 당쟁이 극에 달한 이 사건들이 모두 경종 재위 4년 간 있었던 일들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내 관전포인트는 경종의 非事도 悲事도 아니었다. 여러 사건들이 집약된 역사적이고 역동적인 시기를 사각형의 프로시니엄 무대가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였다. 그 답은 다소 소박했지만 적잖이 몰입도를 높이는 방식으로서, 변화가 적은 연극무대의 단점까지도 장점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효과를 최소화 한 음향과 조명 효과들은 관객들에게 격정의 순간에 오히려 덤덤하게 쳐다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배우들의 등장과 퇴장은 잦지만 그 위치가 일정하고 규칙적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기-승-전-결인지 알 수 없도록 밋밋한, 그런가 하면 또 긴장되게, 나른한 듯 불안하게 내용은 이어진다. 가장 첨예한 당쟁의 시기에 태어나 미련한 듯 신중하게, 반대파에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 잔뜩 자세를 낮춘 경종의 생존방식과 연출방식이 닮아있다.

[아트컴퍼니원 사진 제공]

무대 중앙 사각의 어좌에는 항상 경종이 있다. 그는 앉아있거나 누워서 잠을 자거나 둘 중 하나다. 조선시대 가장 병약하고 왕권이 약한 임금으로 기억되는 경종, 그에게는 어좌가 놓인 단상 딱 그만큼의 자유만이 주어지며 배우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양쪽 뒤로는 망령이 출몰했다가 사라진다. 어쩌면 경종의 정신세계를 지배했을 두 망령은 다름아닌 어머니 희빈 장씨와 아버지 숙종의 그림자다. 어둠 속에서 울려퍼지는 두 망령들의 목소리는 살아있는 경종의 어명보다 강력하다. 장씨는 어미를 위해 복수할 것을 종용하고 숙종은 아들의 소극적인 태세와 고뇌를 비웃는다.

무대 앞에는 소론 노론 대신들과 연잉군이 있다. 이들은 수시로 자유롭게 무대를 드나든다. 망나니의 칼을 든 이들은 익살스러운 몸짓과 과장된 표정으로 무거운 내용에 웃음을 자아내지만, 병약한 임금의 목을 언제라도 내리칠 수 있다는 경각심 또한 자아낸다. 대사는 군더더기가 없다. 너무나 직접적이고 간결하고 또 가벼운 대사들에 자칫 역사극이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겠다는 불안함도 들었다. 우스꽝스러움과 유머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은 배우들의 몫이었다.

[아트컴퍼니원 사진 제공]

뒤로는 숙종과 희빈 장씨의 망령 속에서, 앞으로는 늘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노론과의 싸움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경종. 어좌가 놓인 딱 그 단상만큼의 자유를 가진 자. 30년을 버텼지만 즉위 4년 만에 죽음을 맞게 된 비극의 왕. 이러한 셰익스피어 식의 비장함은 망나니 대신들의 몸짓으로 한방에 날려주는 연출자의 위트가 섞여 ‘경종비사’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죽이느냐, 죽느냐 하는 선택”

“죽이느냐, 죽느냐 하는 선택”

작품의 중간에 반복적으로 들어가는 경종의 나지막한 독백은 친절하게도 관객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던진다. 사실 경종이 평생 싸운 것은 대신들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의심과 인정욕구였을 것이다. 경종의 삶이 지금의 시대에서도 보편성을 얻을 수 있다면 정치적인 맥락보다는 고독한 한 명의 인간 경종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경종은 ‘순순히’ 죽음 뒤로 물러나고 연잉군이 왕좌에 오른다. 그 후 52년 간 조선을 통치하였던 21대 왕 영조(英祖)다. 형의 죽음으로 얻은 곤룡포와 익선관, 그것을 보고 관객들은 기습적으로 시작된 첫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한 영조의 독백을 말이다.

연극이 끝났다. 객석에서 쭈뼛쭈뼛 검은 관객들이 일어선다. 모자를 눌러쓰고 공연장을 빠져나오는데 아는 얼굴이 인사를 건넨다. 소극장에서 만나는 얼굴들은 언제나 반갑다. 대형 공연장보다 다소 가까워서 어색하고 또 그래서 궁금하고, 기억에 남는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행위’만이 어떠한 객관적인 사물을 매개로 하지 않은 채 인간들 사이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유일한 인간조건이라고 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며 자신의 가장 고유한 자아를 드러낼 수 있는 조건, 언어와 행위. 동물도 신들도 따라할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갖고 있는 조건이지만 또한 고립된 인간에게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고도 했다. 아렌트 그녀의 말대로 고립된 인간은 주체가 될 수 없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 있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주체가 될 수 있는 장르가 연극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해주는 ‘순수한 언어와 행위들’, 이것은 무대에서 모방이라는 옷을 입으면서 사람이 사람의 자아를 제3자로 엿보는 쾌감을 선사한다. 무대에서 우리는 나를 보고, 그들을 보며, 내가 속한 장소와 그들이 속한 장소를 구경한다. 그래서 소극장은 다소 어색하고 겸연쩍으면서 또 온기가 느껴지는 것일까. 동물원의 동물을 구경할 때보다 신화의 주인공을 만날 때보다 인간들의 언어와 행위에 탐닉할 때 우리는 더욱 쾌감을 느끼는 것일까.

연극과의 만남은 처음도 지금도 무언가 겸연쩍고, 반갑고, 외롭지 않다. 생전 처음 보았던 소극장의 그 작품처럼 경종의 이야기는 마무리되는 이 글과 함께 벌써 희미해진다고 하면 연출자가 서운할지 모르겠으나, 극장 로비에서 만난 얼굴들과 온기가 더 기억에 자리 잡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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