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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산마을 속 예술 ; 유동하는 지속의 흐름 (l’art au village de Balsan ; Le flux continu de la durée)

양초롱1)

광주천을 따라 걷다 마주치는 생동하는 사람들의 모습과는 달리, 겨울 내내 메마른 나뭇잎들의 망울을 볼 때, 3월의 꽃봉오리들이 여물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듯하다. 유유히 걷던 길에서 우리는 오래된 공간과 벽, 복잡한 골목길로 이루어진 입체적인 마을과 마주하게 된다.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동네의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우리는 특유의 이질적인 벽의 색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진한 파스텔 톤의 색채는 계절의 흐름은 물론 마을의 시간의 흐름 또한 역행하는 듯하다. 사진 속에서 보여 지는 색채와 인간의 눈을 통해 직접적으로 지각하는 색이 다르듯이, 마을이 품고 있는 장구한 시간과 대비되어 표현된 젊고 화사한 색채, 몇몇의 그래픽 문양들과 디자인적인 문구들의 사용은 이 마을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야기 시킨다.

그림 공공미술프리즘, 《청춘발산》 프로젝트 : 마을 벽 위의 색채 작업

발산 마을은 현재 광주 서구 양동 발산로에 위치해있다. 이곳에서는 마을의 재생사업을 위해,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추진하고 있는 《창조마을 조성사업》과 광주광역시 서구시의 도시 재생과·문화체육과의 혁신단에 의한 《별마루 발산마을》이라는 두 개의 사업이 진행 중이다.2) 특히 《창조마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공공미술프리즘>이 시행하고 있는 《청춘발산》 프로젝트는 마을의 미(美), 청춘 빌리지, 그리고 마을의 문화를 ‘발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과 행사를 진행 중이다.3)

그리고 이 마을에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결합된 예술가들이 있다. 신호윤 작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프로젝트 B>팀에서 기획한 《마을미술프로젝트》(2014-2015)와 공유 공간 <뽕뽕브릿지>(2015-현재)이다. 2014년부터 몇몇 예술가들은 오랜 기간 마을 속에 현존해 왔다. 이들은 마을 속 유동하는 시간을 이해하고자 그 지속의 흐름에 편입하여, 끊임없는 현전으로 다가와 마을-내-존재자가 된다. 발산마을이라는 한 공간 속에 거주하는 세 개의 팀은 비록 그 시작과 진행 방식에 있어서는 서로 상이하지만, 결국 거시적인 측면에서는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한국의 주요 도시들이 서로 상반된 정책으로 인해 종종 한 장소에서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 혹은 마을 활성화에 관한 서구의 성공적인 사례의 경우를 볼 때, 예술문화프로젝트는 장기적인 계획과 더불어 도시디자인(건축, 조경), 행정, 엔지니어링 등 환경을 조성하는 전문가와 예술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유기적인 방법을 통해 이루어져왔음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여하튼 이러한 계획에 ‘미술’과 예술가들의 활동이 큰 몫을 차지해왔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다.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이 진정한 철학적 방법론으로서 그토록 주장했듯이, 발산 마을을 ‘직관’(直觀 l’intuition) 해보자. 인터넷과 핸드폰 속의 발산마을에 대한 사진들, 도록의 사진들, 그리고 이 마을의 가능한 모든 위치에서 촬영한 사진을 모아서 주의 깊게 보아도, 방금 전 우리가 직접 걸으며 느꼈던 이 마을의 다채로운 공간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리 속에 흘러가는 사유의 흔적들의 몇 가지 단편을 취해서 그것들을 모아 재구성할지라도, 우리는 단지 그 시간을 공간화하여 표상하고, 그들의 삶과 오랜 기억 속의 추억의 변화를 양적 변화로 바꿔놓고, 생명의 지속적 전개를 단편화했을 뿐이다. 따라서 그들의 시간에 일치하기 위한 ‘공감’, 그리고 그들의 유동하는 지속의 흐름에 침잠하기 위해 우리 내면의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는 최대한 마을 속으로 몰입하며, 그 속에서의 공간, 집, 사람들의 생활, 그리고 마을 속 작품들을 직접 체험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들과의 오랜 생활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몇몇 예술가들의 활동을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르그송이 ‘직관’이라 이야기했던 그 체험... 깊은 내면의 성찰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발산 마을을 파악하고자 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곳의 삶 속에 함께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자유로움을 자명한 사실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2 백상옥, <발산을 지키는 영웅들>, 《별이 뜨는 발산마을》 프로젝트 중, 2014.

그림3 최윤미, <발산마을 이야기>, 《별이 뜨는 발산마을》 프로젝트 중, 2014.

이런 측면에서 신호윤 작가와 박상현 예술 감독이 기획하고 지속적으로 이끈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예술가와 주민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마을을 위한 단순한 환경개선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통한 마을 이야기, 그리고 공·폐가를 활용해 예술을 지속적으로 마을 내 문화로 정착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우리의 흥미를 이끈다. 《별이 뜨는 발산마을》과 《별별잡기》라는 두 번의 마을미술프로젝트를 통해 예술가들은 발산 마을이 품고 있는 시간을 공유한다. 오랜 세월의 흔적들과 주민들의 생활을 공유하며 이끌어낸 작품들은 여전히 유동하는 지속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의도는 2015년 신호윤 작가가 기획한 <공유공간 뽕뽕브릿지 개관전 : 발산 3부작>전시를 통해 더욱 엿볼 수 있다.4) 이 전시에서 마을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여러 시선들을 통해 마을을 직관하고자 했던 작가들 – 이세현, 박세희, 박성완, 타라재이 - 은 마을 속 예술작품들과 함께 자신만의 다양한 방법으로 발산마을의 ‘존재’를 끄집어낸다. 신호윤 작가는 발산마을의 외형적인 변화, 그리고 실질적인 주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어 왔던 일부 문화재생프로그램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의문은 <발산마을 3부작>에서 작가들의 여러 시선을 규합하며 “마을의 외피와 내피, 그리고 내피 속 감정” 을 공감하기 위한 다양한 작업을 진행시켰다. 전시를 기획하며 제기되는 질문을 통해 그는 발산마을의 ‘내적인’ 변화에 새로운 방향을 제기하였다.



그림4 공유 공간 <뽕뽕브릿지>의 프로그램 중 ‘레지던시 프로그램’ 안내, 2016. 04.

한국의 일부 문화예술프로젝트가 놀이문화로서의 축제를 지향하고 있지만, 이는 대부분 개인의 심리적인 쾌락, 휴식, 여유 등의 ‘오락성’과 관계되어 왔다. 그 가운데 보여 지는 지역적 ‘소외’의 문제, 그리고 창조성의 결여는 전체적인 질서와 조화, 독창적이고 비판적인 기능의 강화, 상상력과 생산적인 사고의 확대 등을 지향할 수 있는 진정한 놀이의 창조성은 배제되어져왔다. 특히 미적인 기능으로서 존재하는 벽화들과 ‘기능적인’ 작품들은 종종 일부 마을의 역사적·문화적 공간을 배제시키며 단순하고 획일화된 결과물들을 생산해냈다. 천편일률적인 ‘벽화’ 작업, 벽의 색칠, 지자체·개인 소유주·자본과의 관계 안에서 규정되는 예술가의 자율성과 예술적 표현양식, 정책의 한계, 상업적 예술 등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도시 미술에 대한 비평과 ‘열린’ 담론을 형성할 때, 그리고 지역이기주의와 지역·학력 연고주의를 경계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이동과 교류가 형성될 때, 비로소 우리는 단순히 도시에 색을 입히거나 미적 작업을 위한 게 아니라,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활동 공간으로서 도시를 ‘열린 공간’으로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자유롭게 점유하며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다양한 지역의 예술가들끼리의 소통·협업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대중을 교육시키고 소통하고자 했던 ‘일방적인 중재’의 역할에서 벗어나 예술가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주는 상호보완적인 배려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 대중 또한 ‘직관’의 방법으로 작품과 도시 공간의 유동하는 지속의 흐름에 침잠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광주가 도시 예술에 대한 ‘열린’ 자세와 ‘투명한’ 제도를 형성해 나간다면, 도시 혹은 마을 속 예술 전시의 비약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으며, 지역 예술가들에게 보다 폭넓은 예술의 다양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 서구 사회의 수많은 문화예술정책의 큰 중심에는 바로 다양한 ‘예술가들’의 유입이 있었다. 이러한 현상의 근저에 표현의 자유와 활기 있는 창작 활동의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런 여건 속에서 예술가들은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도시를 선도적인 역할로 만들어 왔으며, 그 도시의 문화적인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이럴 때 도시 혹은 마을의 공간은 단순히 인위적이고 계획적인 문화 공간으로서 창출되는 것이 아니고, ‘자율’에 의한 창조적 형태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91)가 언급했던 일상생활의 공간은 소비와 소외의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전유의 가능성을 여는 것, 비판적 시각으로 일상생활을 바라보는 것, 실천적인 일상을 통해 개인의 삶에 내재되어 있는 창조성과 예술적 표현을 찾는 것이다. 발산 마을 속 예술가들 또한 자본에 의한 일상 공간의 일방적인 점유에 대면하여 다양한 사람들과의 예술적 공유를 통해 예술을 일상 공간 내 문화로 형성해 나갈 것이라 기대한다. ‘공간-내-현존’하는 발산 마을 속 예술은 단지 도시의 낡고 낙후된 공간을 재활용의 수단으로서 예술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그 고유한 지속을 되돌려주는 새로운 ‘속도’와 ‘공감’을 발견해 나갈 것이다.

 

1) 프랑스 그르노블 2대학 미술사학 박사, 現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미술학과 초빙객원교수

2) 이 마을 사업은 서구 양3동 천변 좌로 108번 길 일대를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이곳은 1970년대 전남 방직 공장으로 인해 여공들의 숙소 역할을 하면서 인구가 증가했다. 이후 전남방직의 쇠퇴와 지속적인 구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주민이 급속히 감소하면서 공·폐가의 방치, 마을의 고령화 등이 발생했다. 이러한 지역적 상황을 고려하며,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이 마을에 대한 환경조성, 마을 공동체 회복, 그리고 문화생활 향상을 목표로 하는 정책들을 추진 중이다. 우선, 광주창조혁신센터가 주관하고 현대자동차의 후원에 힘입어 선정된 사업 <공공미술프리즘>의 《발산창조문화마을 : 청춘발산》은 일반적으로 마을 환경개선을 위한 디자인(벽 컬러, 패턴 디자인, 화분 디자인, 그림 등)과 주민 참여로 이루어지는 문화 체험 등을 주목표로 하는 문화 활동이다. 이는 문화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마을 재생프로그램의 성격을 띠고 있다 : 민관합동 창조경제 추진단 자료 제공 https: //ccei.creativekorea.or.kr ; 발산창조문화마을 청춘발산 『마을 산책 손님편』 안내 책자 참조.

더불어 《별마루 발산마을》은 취약지역의 생활여건 개선 사업으로 광주 서구청에서 추진 중이다.

마지막으로 2015년 이래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채택된 <프로젝트 B> 팀에 의한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시각예술 지원 사업이 있다. 이 비영리단체는 신호윤 작가를 중심으로 하는 <뽕뽕브릿지>와 박상현 감독에 의한 <공공미술>팀으로 소규모로 분류되었다. 첫 번째 사업의 《별이 뜨는 발산마을》을 계기로, 2차 사업은 《별별잡기》가 진행되었다. 이후 신호윤 작가는 본격적으로 <뽕뽕브릿지>팀에 의한 <공유공간 뽕뽕브릿지 개관전 : 발산 3부작> 전시를 계기로 발산마을에 예술가들의 삶의 터전을 형성했다.

3) 윤샛별 엮음, 『발산마을 이야기책 마실』, 공공미술프리즘, 2015, 10 ; 채주희 엮음, 『발산마을 이미지책』, 공공미술프리즘, 2015, 10.

4) 2000년 이후 지속되어온 ‘한국형’ 공공미술프로젝트에 대한 예술가들의 조금씩 변화된 태도가 엿보인다. 일부 도시의 공공미술프로젝트의 경우, 디자인 혹은 도시계획 분야에서 진행되면서 공공미술의 본래적 의도에서 벗어나 도시 혹은 마을 경관의 이미지 구축, 그리고 문화프로그램에 치중하고 있다. 이에 예술가들은 새로운 공간 창출에 더 힘을 보태며, 예술이 다양한 이해관계의 집단을 매개하고, 예술이 곧 문화가 되기를 희망하며 일종의 ‘예술자생촌’을 형성한다. <뽕뽕브릿지> 또한 새롭게 구성된 예술가들의 공유 공간으로 이 마을을 계속해서 소통하기 위한 매개체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신호윤 작가는 “마을에서 이방인으로써 존재하는 예술가의 활동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서 ‘예술가의 원주민화’를 제안”한다 : 공유공간 뽕뽕브릿지, <AIV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조.이러한 방향에 발맞추어 예술가들의 공간 탄생은 예술과 삶의 관계를 형성하며, 다양한 예술적인 장을 형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예술과 삶’의 교두보 역할로서 광주 지역 예술가들의 공간에 대한 현 상황과 전망 등에 대한 논의는 다음으로 진행시킬 것이다.

5) 신호윤, 「개관전 ‘발산 3부작’에 부쳐」, <발산3부작>, 『뽕뽕브릿지』, 2015.11.3.-2015.11.29. 전시도록, p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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