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젤리제 오케스트라 & 에릭 르 사주
Orchestre des Champs – Elysées & Eric Le Sage
2016. 6. 5.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1
<사진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홈페이지> * 위 사진은 실제 공연장면과는 다소 차이가 납니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고 이 흰 종이에 글을 채우려 하다니 정말 무모하기 짝이 없구나...하는 짧은 후회를 안고 예술극장1에 들어선 게 맞다. 사실 그랬다. 클래식 음악이라면 직업상 업무를 위해서거나 그렇지 않으면 숙면을 취하기 위해서거나 그것도 아니면 난데없이 자녀 교육에 열의가 생기거나 하는 이유와 어울렸으니까 말이다.
이런 나를 공연장으로 이끈 것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예술극장이라는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떤 종류의 공연도 빨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첨단의 공간이지만 또 그래서 클래식 연주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호기심이 일었다.
공간 –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행하지 않는
무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행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중앙에 놓인 연주자들의 의자와 보면대, 벽면에 빔 프로젝터가 비추는 전당의 로고와 공연제목, 검은 사각형 공간에 준비된 것은 딱 이만큼이었다. 이 직시적인 연출은 공연의 주인공들보다 관객석을 더욱 도드라지게 할 지경인지라, 연주자들의 검은 의상은 나를 불경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앙에 고풍스러운 악기들을 둘러싸고 있는 관객들의 의상은 계절이 계절인지라 너무 밝고 환했다.
이 단순한 무대의 가장 큰 효과는 클래식의 무게를 집어던진 점이다. 무거운 장막을 걷어내고 낮은 단상만을 의지한 무대연출은 오케스트라를 한결 가벼워보이게 했다. 클래식을 대하는 관객들의 마음도 가벼워졌으리라.
장엄함보다는 차라리 모던하게 느껴지는 검은 방의 미니멀리한 연출은 오직 음악에만 몰입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세 개의 벽을 화이트와 블랙의 모던한 패턴 영상으로 맵핑한 것은 모차르트 시대 고전주의 음악과 묘하게 잘 어울린다. 절제되고 세련되면서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 고전주의 음악은 시대를 뛰어넘어, 광주에서 가장 현대적인 공연장에 녹아들었다.
포르테 피아노 - 수다스럽거나 노골적이거나
그래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9번 ‘죄놈’은 수다스럽고 잘생긴 전기수(傳奇叟) 같았으며, 직시적 연출은 단순해서 노골적이다. 피아노 초기형태인 건반 60개의 ‘포르테 피아노’는 조그만 불륨으로 관객들을 더욱 ‘가까이’ ‘가까이’ 불러냈다. 현대의 피아노보다 소리가 높고 맑은 이 고전적 악기는 소리는 작으며 고풍스러운 것이 매력적이다. 클래식 음악이 대중적인 음악회의 형태를 띠기 전 바로크 시대의 궁정음악회가 이런 분위기였을까 잠시 상상해보았다. 이런 점에서 지휘자 없이 악장의 리드로 완성한 점, 하우스콘서트 못지않게 연주자와 관객의 거리를 가깝도록 세팅한 점은 탁월했다.
이럴 바엔 관객 수를 과감하게 줄여서 궁정음악의 느낌을 더 부각시켰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생긴다. 에릭 르 사주(Eric Le Sage)라는 프랑스의 스타 피아니스트를 세우려면 그래도 500석 이상의 관객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무대의 바로 측면에 앉았던 내가 저 뒤에 멀리 있는 관객들을 걱정한 건 지나친 참견인가.
주역과 조연 바로 정하기
3D 프로젝션 매핑은 다소 안쓰럽다. 이번 공연의 제2의 주인공으로 기사화 됐던 3D 매핑은 솔직히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라는 타이틀보다 내겐 솔깃했었다.
하지만 영상이 연주되는 음악과는 별개로 제작된 점, 3D맵핑의 입체 효과를 살리기에는 관객의 시선이 프로젝션과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점 등은 이번 콜라보의 아쉬운 점이다. “미디어아트와의 결합으로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느낌, 궁정 음악회에 온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고 했던 바, 필자처럼 제사보다 떡고물에 관심 있던 관객들은 다소 실망했을 거라는 점이다. 차라리 2차원의 영상으로 병풍효과를 내는 것이 솔직할 뻔 했다. 이 날의 주인공은 미디어 아트가 아니라 모차르트와 리겔이었으니까.
프랑스 아비뇽 축제가 세계적인 축제가 되기까지 70여년의 시간이 흐른 것을 생각하면, 아시아의 다양성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겠다는 아시아문화전당은 이제 걸음마 단계일 것이다. 개관프로젝트를 막 마친 아직은 낯선 얼굴 아시아문화전당. 건립은 완성이 아니니 때이른 실망보다는 채찍과 지지를 꾸준히 보내주며 나 같은 토박이 관객이 문턱을 자주 넘나드는 것이 지금은 필요하지 않나 싶다. 공연이나 전시물 하나하나에 전당에 대한 모든 평가를 쏟아 붓는 방식보다는 포르테 피아노처럼 작고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연주해가는 방식이라면 비판도 즐거울 것 같다.
위정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