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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 속 예술 ; 대안공간과 노마디즘

1.

2차 세계 대전 직후의 미국 모더니즘 전성기에 잭슨 폴록을 비롯한 미국 추상 화가들은 자기표현으로서 생생한 몸짓과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적 표식을 도출하기 위해, 외부의 잔상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작업하며 최대한 직관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자신의 모든 사유와 집념 그리고 그 실현의 장소로서 모더니즘 예술가들의 아틀리에는 개인의 사적 공간이자 창조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미술의 상업화로 주류 미술에 포함되지 못한 몇몇 예술가들은 미술관이나 제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전시하고 작업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했다. 클래스 올덴버그(Clases Oldenburg)나 앨런 캐프로우(Allan Kaprow) 같은 작가들은 총체적인 전시 환경을 위해 도심지의 갤러리에서 벗어나 직접 공간을 발굴하고 전시를 했다. 또한 1970년대 뉴욕에서 소호(Soho)를 중심으로 많은 대안공간들이 생겨나면서, 스스로 전시를 만들어가는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이러한 공간들은 영구적인 컬렉션을 갖고 있지 않았고, 작품 판매 또한 큰 목적을 두지 않아 상대적으로 미술사로부터 자유로운 작업들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들이 미술관과 갤러리의 전시와는 상반된 의도를 가지고 대안 공간 전시를 감행한 것은 아니었으며, 미술관이든 대안공간이든 작품을 위한 전시 장소를 통해 작품의 가치를 부각시키고자 주변의 제도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1960년대의 미국 저항정신이 이루어 낸 반문화운동을 배경으로 등장했던 이러한 대안 공간은 역설적으로 1970년대 후반에 이르자 반문화적 요소들이 주류화 되기 시작했다. 1981년 MTV의 도입 이후에, 소비 공간 혹은 복합적 문화예술 공간을 지향하는 대안 공간들이 급성장하면서 수많은 작가들이 대안 공간을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이에 미술관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안공간에서 행해지곤 했던 설치형태의 미술을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주변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중심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이들은 초기의 급진성을 잃어버렸다.1) 이렇듯 공간 및 제도의 변화에 대한 현대 예술가들의 창작 행위의 열정,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예술적 방법의 간구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들의 근저에 제기되는 다양한 논쟁들 중 하나는 바로 예술과 자본의 문제일 것이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는 예술 시장과 제도를 거부함으로써 예술의 자율적 위치를 점유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했던 예술가들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과 예술가를 관람객으로부터 멀리 위치시켜 놓음으로서 예술가의 스타성 혹은 예술의 아우라를 강조하고자 하는 전략을 추구했던 예술가들 혹은 상품 가치를 높이는 방식 앞에서 실패를 적절히 예상하거나 도리어 그 실패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예술가들이 제도적·상업적 전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예술의 이면(異面)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아무것도 아닌 것의 선구적인 형태나 악의 선구적인 형태가 있다. 그리고 전문가의 범죄, 무가치의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 가치를 위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더럽히고 유용한 목적을 위해 악을 더럽히는 모든 사람들의 스노비즘이 있다”2)고 언급했다. 즉, 미적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이용하며 ‘아무것도 이해할 것이라고는 전혀 없지 않을 것이다’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편승하여 예술이 사상의 보호를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 예술이 무가치의 상업적 전략을 지니며, 이러한 전략을 연기(演技)하는 사람들이 있고, 더 나아가 지나칠 정도로 생생한 형태로 연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서구 예술계의 현상만은 아닐 듯싶다. 한국의 예술계 또한 빠른 속도로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예술가들의 빈부격차 및 제도적 모순, 그리고 예술의 자율성 문제가 시급히 개선되어야 될 상황에 직면해있지만, 자본은 빠른 속도로 한국 미술을 잠식해 들어가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의 <조영남 사건>은 한국 미술계의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자신의 작품은 ‘대작’이 아니라 ‘관행’에 따라 제작되었다고 했던 말은 우리로 하여금 서구 예술가들이 진행해왔던 창조 방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숙고하도록 만든다. 물론 그의 작업 방식 및 그에게 화가가라는 지위를 부여하며 ‘예술가’들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일 수 있지만, 이 사건은 오늘날 사회에서 ‘예술 혹은 예술가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물음에 관한 우리의 재성찰을 요구하는 듯하다.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이 하나의 논쟁적인 주제로 되어버린 현 상황 속에서, 스트리트 아티스트 뱅크시(Banksy)의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3) 다큐멘터리 영화 속 티에리 구에타(Thierry Guetta)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한 바가 크다.

2.

뱅크시의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에서 주된 이야기는 티에리 구에타에 관한 것이다. 프랑스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구제 옷 장사를 했던 티에리는 세상 모든 것을 기록하려는 습성 때문에 카메라의 삶이 곧 자신의 일상이 되었다. 모든 일상을 카메라로 낱낱이 기록하던 그는 우연히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의 활동을 영상으로 담게 되었다. 이들과 오랫동안 친분을 쌓았던 그는 결국 뱅크시와의 만남을 통해 스트리트 아티스트가 되기로 결심한다. 티에리는 다른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이 했던 - 스트리트 아트 공식을 적용하여 – 것처럼 M.B.W.(Mr. Brainwash) 닉네임을 만들었다.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작업을 시켜 만든 자신의 얼굴 사진을 통해 그는 ‘이미지-태그(image-tag)’ 또는 ‘엠블렘’을 창조하여 ‘반복’이 곧 저항적인 태도라는 태그(tag)의 정신을 실현하였다. 그의 작업 방식은 대부분 스스로에 의해 작업하는 게 아니라, 예술 종사 관련 사람들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해서 이루어졌다. 더불어 그는 자신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L.A.의 방치된 건물에 대규모의 예술 전시, <삶은 아름답다 (Life is Beautiful)>를 계획한다. 이 전시의 실행은 대부분 다른 예술 전문인들에 의해 기획되며 완성되었다. 잡지, 인터뷰, 뉴스 등의 언론 매체를 이용한 홍보, LA 위클리의 올해에 놓칠 수 없는 전시회 극찬, 성공적인 전시의 개·폐막 등은 그를 본격적인 예술가로 등극시켰다.

이 영화는 스트리트 아트를 표방하는 티에리의 모습과 이러한 보이지 않은 과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의 작품에만 열광하는 대중과 미술계를 과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시간 동안 예술이 그 자체로 빛이 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치장, 허위와 허세, 유명세가 이 다큐멘터리에 의해 한 순간에 모든 게 밝혀진 상황에도 자신의 명성을 앗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명성을 더 드높이게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도래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전시를 관람했던 대중이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어떤 면에서 앤디 워홀의 정통 후계자”일까? 아니면 “인생의 마지막까지 기다려 보면 내가 토끼인지 거북이인지 알 거다”라는 그의 말을 믿고 그에 대한 평가를 기다려야 되는 걸까? 우리 안의 현대 예술은 건강한가, 혹은 만들어진 영웅인가?

예술적인 형상들, 다양한 예술 기법의 시도, 반항적이고 비판적 태도, 자유로운 사유의 표현, 전시 패러다임의 변화 등을 통해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4)는 낙서 행위를 예술적 지위로 오르게 한 현대 예술 운동이다. 그러나 왜 이 운동은 혁신적인 현대미술의 일부로 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가벼운’ 예술로 비판을 받는 것일까? 장 프랑수르(Jean Francheur)가 “도시 미술의 모든 문제는 거리에서 갤러리로 넘어갈 때 표명된다.”5)라고 언급한 것처럼, 젊은 작가들의 빠른 성공, 손쉬운 기법, 가식화된 행동, 공식적 주문에 대한 작가들의 선명하지 못한 태도와 결탁 등은 이 운동 자체에 대한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수많은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의 지적이고 윤리적 의식, 작품에 대한 철학적 태도는 극명하게 대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어떤 젊은이들은 적극적으로 ‘스트리트 마케팅’이라 부르며 거리에서 작업한다. 이들이 겉보기에 비슷해보일지언정, 우리는 예술적 아방가르드 정신을 보여주는 자들과 ‘보헤미안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태도’를 흉내 내는 작가들의 ‘가식화된 예술(l’art simulé)을 구분해야 할 것이다.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의 저항적인 태도가 하나의 예술적 장르로 유입될 수 있었던 계기였다면, 갤러리에서 ‘선물가게를 지나야만 출구’에 다다를 수 있는 현대미술의 자본주의는 역설적으로 이 예술운동의 힘을 하락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다. ‘낙서’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가 되는 상황, 다시 말해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낙서를 통해 기득권을 향해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던 이들이 또 다시 기존의 질서에 범주화·제도화 되는 과정은 자본의 논리를 통해 소비문화 속에 빠져든 현대예술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구 예술가들이 보여줬던 저항적·비판적 태도와는 모순되게 문화 산업에 의해 상업화되는 예술의 이면(異面)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예술적인 저항을 가장한 채 매스컴과 갤러리 등의 요구에 적응하는 방식에 민감한 작가들, 예술가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 매체와 작업 방식에 대한 의구심, 진정성과 상업성의 모호한 경계 등을 보여주는 작가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예술의 이면은 예술 자신에게도, 그리고 제도적인 문제에서도 불확실성을 이용하며, 그것은 효과적인 전략이 되었다. 많은 것들이 여전히 예술 행세를 한다. 쓸데없는 것을 통해 전시되는 상황들은 쓸데없음이 곧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보드리야르가 ‘예술의 음모(le complot de l’art)’라고 불렀던 것은 “예술의 관념, 예술의 이데올로기 주위에, 그리고 관념에 전념하는 예술이나 서서히 관념이 되는 혁신적 형태에 따르는 예술 주위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거대한 집단적 음모, 즉 대중의 미적 모사가 꾸며지는, 끊임없이 참고하는 관념으로서의 예술 주위에 있다. 예술 시장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미적 가치에 대해서도 수치스러운 공모를 통해서” 이루어졌다.6) 세계와의 유혹 속에서 대상이 되거나 이미지의 부도덕한 매개물이 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더불어 이는 예술사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 예술가(l’artiste simulé)와 진정한 예술가(l’artiste véritable)를 구별 짓는 일이기도 하다.

3.

우리가 서구의 사례들을 제시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실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이미 벌여 놓은 현상들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힘 있게 풀어나갈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비판적이고도 분석적인 거리(distance)를 두며, 무관심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예술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자 하는 일종의 에너지를 추구한다면, 우리 역시 현대 예술의 또 다른 현상으로 옮겨 감에 따라 역동적인 에너지의 출발의 가능성을 찾아내며 새로운 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대도시 속 예술가들의 활동과 예술과 자본에 대한 수많은 논쟁 속에서도 한국 지역 작가들의 활동에 대한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문화관광부와 정부의 예술 정책, 그리고 시·국립 미술관 등의 다양한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의 국가의 제도상의 변화와는 별개로 현장에서 예술가 스스로 보다 자율적이고 실질적인 방안들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초기 한국 지역 작가들이 수도권의 갤러리 전시를 통해 자신들의 작업을 알리고자 노력했다면, 지역 작가들은 지역 그 자체에서의 활동을 통해 외부의 주목을 끈다. 이러한 힘은 작가들 스스로의 끊임없는 인내와 성실함을 바탕으로 나온 결과가 아닐까 싶다. 자본은 지역 예술가들 스스로에게도, 예술 그 자체에도, 그리고 작업 공간에도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공간을 소유하거나 임대함으로써 자신만의 사적 공간을 통해 작업하는 예술가들이 있으며, 한편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공간 자체를 형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작업 공간을 개인적으로 소유하든 그렇지 못하든, 예술가 개인에게 제기되는 경제적 취약성은 여전하며 예술 구매자와 관란자의 감소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그러나 동시에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는 문화예술정책들의 범람 속에서 예술의 정체성은 여전히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예술가 개개인의 ‘아틀리에’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면, 어떤 이들은 예술가 스스로의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방안의 일환으로7) 건물 외 부속건물, 오래된 장소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지역 주변 건물과 융합된 아틀리에 공간을 재구성하였다. 예술가들은 서로 규합하여 비영리 단체의 대안 공간들을 형성하며, 다른 예술가들에게 초기 작업 활동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원동력을 제공해주고 있다.

지역사회와 호흡하며 열려진 공간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는 광주의 예술가들의 공유 공간은 발산 마을 속 <뽕뽕브릿지>8)를 비롯해 대인 시장 속 <미테-우그로>9), <D. A. 오라>10), 문화 전당 전일빌딩 근처 <바림>11), 독립 큐레이터 그룹 <OverLab>12) 등이 있다. 이러한 대안 공간들은 신진 작가들을 위한 거주형 레지던시 프로그램, 국제교류를 위한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 게릴라·기획 전시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의 공간은 작가들 혹은 독립 큐레이터들이 자체적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공동체 생활을 지향하면서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외부의 사람들 – 거주 주민들과 관람객들 - 에게까지 에너지를 부여하는 내적·외적 팽창의 힘을 갖고 있다. 즉 이들의 공간적 힘은 다양한 예술가들 – 장르와 국적에 국한되지 않는 - 이 ‘자유롭게’ 왕래하며 자발적 창작촌을 구성하며 발현되고 있다. 갤러리스트가 갤러리 공간을 운영하는 방식과는 달리, 이들은 스스로 공간을 찾아가며 실제 작업을 할 수 있는 예술가들의 공간을 형성하며, 현장을 좀 더 즉흥적이고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들의 활동과 문화적 교류, 토론과 담론의 장을 형성하는 공간의 힘은 리좀(rhizome)에 근원한다. 이러한 리좀적 힘이 가능할 수 있는 원동력은 작가들 간의 결연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자극을 주는 관객들의 힘에서도 제기될 수 있다. 많은 자금이 들어간 기획 전시 또한 관람객 방문 유도에 고민을 안고 있다. 하물며 지역의 큰 미술관과 대표적인 갤러리 이외의 소소한 전시 공간에서 작업을 선보이는 예술가들의 작업은 종종 쉽게 찾기 힘든 위치, 경제적 여건으로 인한 홍보 부족, 전시 규모의 작은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데 어려움이 있다. 예술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에게 좀 더 친절한 방식으로 다가가고자 예술가들이 많은 노력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적은 예산은 필연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영리 단체들의 적은 예산을 통해 만들어진 전시에 대한 피상적인 평가보다는 관객 또한 예술작품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침잠’을 통한 이해와 공감을 형성하며 예술가들의 작업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중 ‘스스로’ 그러한 공간을 찾아내며 공유하고 분석적인 힘을 지닐 때, 예술의 리좀적 현상은 대중과의 만남을 통해 더욱 공공의 장으로서 대안 공간에서 벌어지는 토론과 담론 문화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들에게 좀 더 깊은 관심과 복합적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적극적 자세가 요구될 때, 비로소 이 공간들은 살아 움직이며 생생하게 팽창할 것이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는 『천 개의 고원』에서 유목적 삶이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버려진 불모지에 달라붙어 새로운 생성(生成)의 땅으로 바꿔가는 것에 주목하면서, 이를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과의 접속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새로운 철학적 삶의 양식으로 개념화했다.13) 예술가들이 단순히 공간적 이동이나 외국작가들의 합류로 인한 물리적 혼성이나 순회 작업들로 보여 지는 ‘이동성’에만 집중하는 것들과는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단순한 여행의 환상으로서 보여 지는 이러한 작품들이 들뢰즈가 언급한 진정한 노마디즘을 보여주는 작품들과의 상이한 양상이 마치 동일한 성격을 지닌 것처럼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철학적·창조적 사유가 함께 이루어질 때,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4.

자본주의 사회 속 예술, 그리고 예술가들의 생활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지에 대한 진단과 고민이 계속해서 필요하다. 프랑스 현대 예술가 제라드 즐로티카미앙(Gérard Zlotykamien)은 예술제도권을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았지만, 예술가 스스로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로움을 강조하면서 예술계 안으로 ‘무비판적’으로 동화되는 것을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접근 했다.14) 더불어 예술 행정 및 관계자들이 예술의 자율성과 창조에 대한 개입을 최소한으로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제도와 자본의 시스템 밖을 완전히 떠나 작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스스로 어떻게 효율적으로 제도와 자본을 ‘건전하게’ 이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예술계는 이러한 예술가들에게 어떤 목적 없이 그들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도적 고민이 시급하다. 예술적인 문화의 장은 예술가들의 공동체가 문화지구를 만들고 새로운 지역적 정체성을 마련해 주며, 대중이 적극적으로 반응할 때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가 창조적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창작의 산실로서 작업실을 필요로 하는 공간이 예술가의 자율적 상상이 보존될 수 있도록, 동시에 예술가의 창조적 에너지가 사적 아틀리에를 넘어 지역사회와 유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대안 공간 역시 경제적,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밀집하면서 하나의 문화를 형성해왔던 터전은 상업화로 인해 작업실 시세가 오르며 오히려 작가들이 내몰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경제적 지원 능력, 예술가들의 자율적인 활동 보장 등을 위한 몇몇 사람들의 관용과 이해, 후원자 및 예술가들의 필수적인 역할은 예술이 번영할 수 있는 요인들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들의 ‘지배력’, 실용성과 목적에 대한 의도, 이익계산 등은 자유와 창조에 저해 요소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예술가, 독립큐레이터, 비평가 등을 위한 적극적인 제도적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 및 결과를 형성해 나갈 때, 더욱 자유로운 창작 행위로서 예술가들과 비판적 사유를 지닌 대중과의 소통의 장을 형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술가는 어떤 위치로 자리매김 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작업 공간 및 전시 공간은 어떤 변화를 겪으며 새로운 예술적 노마디즘을 형성해 나가는지, 우리는 광주 지역 속 대안 공간의 모습과 지역 예술가들의 활동에 계속해서 주목할 것이다.

 

1) Phil Patton, “Other Voices, Other Rooms : The Rise of the Alternative Space”, Art in America, 07, 1997, 참조.

2) 보드리야르는 앤디 워홀이 이미지의 한 가운데로 무를 다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실제로 무가치하지만, 그가 무가치와 무의미를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었으며, 이 사건을 이미지의 숙명적 전략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현대 예술의 이중성은 바로 무가치, 무의미, 비의미를 요구하는 것인데, 이미 무가치한 데도 무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는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신랄하게 공격한다. 이에 대해 다니 로베르 뒤포르는 현대 예술이 현혹적 수사학을 통해 예술마저도 이득, 수익, 암묵적 동조 등 관객을 한통속으로 끌어들일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더욱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도덕적인 차원에서도, 참과 거짓의 경계를 허무는 모호함으로 모든 가치 기준을 흔드는 비평적 방법들, 자본주의적 생산의 특징들을 추구하고 있는 현대 예술, 그것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는 대중들이 관계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예술’이 되고, ‘모든 미학적 가치가 예술적 가치로 작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에 의하면, “이러한 예술은 모든 도덕 가치를 조롱하고 그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비웃는 허무주의적 웃음을 지닌다. 반면에 진정으로 혁신적인 예술은 그 진정성을 가지고 상상계의 유희와 비평적 시각을 해방시키며, 더 나은 세계를 재구성하며 건강한 웃음을 안겨준다.” Jean Baudrillard, “Le complot de l’art”, Libération, le 20, mai, 1996, 참조 ; Dany-Robert Dufour, “Art contemporain, Créateurs en mal de provocation”, Le Monde Diplomatique, avril, 2010.

3) Banksy, Exit Through The Gift Shop, un film de banksy, 2011.

4) 스트리트 아트 운동에 대한 역사적·지역적 맥락에 대해서는 본인의 논문을 참조할 것 : 양초롱, 「스트리트 아트 운동의 등장과 전개에 대한 역사적 고찰: 1980년대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파리를 중심으로」, 『현대미술학회』, 제19권 1호, 2015, pp. 167~215. 5) Stéphanie Lemoine et Julien Terral, IN SITU : Un panorama de l’art urbain de 1975 à nos jours, Beau livre, 2005, p. 115.

6) Entretiens avec Philippe Petit ; Jean Baudrillard, “L’enface de l’art”, Le paroxysme indifférent, Grasset et Fasquelle, 1997.

7) 작가들 개개인의 활동과 더불어 이제는 성숙한 제도적 장치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된다. 오늘날 서구의 많은 기업들이 실질적인 예술지원 사업뿐만 아니라 상당량의 기업 제품, 장비 및 회사시설물 등을 제공하며, 전문 기술 용역을 이용케 함으로써 기술과 행정상의 지원도 제공한다. 이러한 방법과 예술 지원 동기에 연연하지 않는 꾸준한 후원증대는 예술가들이 창조적 활동에 대한 방해를 받지 않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예술가는 다양한 종류의 <예술가협회>에 가입함과 동시에 국가가 지원하는 아틀리에 입주 순서에 맞춰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정부가 예술가의 작업실 공간을 지원함에도 불구하고, 협회에 가입이 되지 않은 예술가들이 도시 공간에 버려진 공간들을 불법으로 이용하더라도 암묵적으로 용인하며 예술적으로 활용할 방안들을 찾고 있다.

8) <뽕뽕브릿지> 공유공간은 2015년에 양동 발산마을에 터전을 마련하며, 국내와 해외 작가들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작업실,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했다. 발산 마을 속 예술에 대한 이해는 본인의 첫 번째 글, 《발산마을 속 예술 ; 유동하는 지속의 흐름》을 참조할 것.

9) <미테-우그로>는 ‘밑에’와 ‘위로’라는 뜻의 사투리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이름이다. ‘밑 공간(미테)’은 전시 공간이자 발표하는 공간으로 30평의 규모이고, ‘윗 공간(우그로)’은 카페 공간으로 세미나 등으로 사용한다. 미테-우그로는 2009년 지역의 작가들과 기획자들이 뜻을 모아 설립한 비영리 예술공간,단체이다. <미테-우그로>팀은 조승기 디렉터를 중심으로 동구 제봉로 184번길 7-6(대인동 308-33) 대인 시장 내 위치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시켜왔으며, 매년 아시아를 기반으로 한 작가교류와 문화교류에 힘쓰고 있다. www.mite-ugro.org

10) <D. A. 오라>의 2층은 갤러리와 작가들의 작업실이 있고, 3층은 게스트하우스 및 공유공간이 있다. 옥상은 종종 파티용으로 사용된다. 대인시장 내 위치한 이 공간은 김영희, 김탁현 공동 디렉터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 대안 공간은 장르의 경계 없는 전시를 통해 문화예술복합공간을 형성 하고 있다.

11) 바림(Barim)은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에 있어서의 아마추어리즘”을 지향한다. 바림은 고시원공간을 그대로 살려 미디어 공간과 작업실, 워크샵 공간, 아틀리에, 전시 공간 등을 운영하며 5개의 공간을 사용한다. 그리고 5층 전시 공간의 뒤편에는 게스트하우스 겸 작가들의 숙소가 마련되어 있다. 8층의 옥상은 파티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더불어 창의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아 ‘무한 상상실’을 운영하여 시민들에게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교육시킨다. 현재 이 공간은 동구 중앙로 196번길 31-10에 위치하고 있다. https://barimart.wordpress.com,

12) <OverLab>은 현재 김선영 독립큐레이터가 대표로 있다. 그녀는 “광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은 물론이고 현장 기획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등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 제시하기 위해 독립큐레이터 그룹을 모색”했다. <오버랩>은 예술가와 큐레이터의 밀착된 관계 구축, 기존 예술계 관행을 넘어서 큐레이터와 작가들 활동이 인정받는 풍토 조성, 국내외 직접적 교류 활동 지속, 연구와 실험을 실현하는 연구소 개념 도입, 작가 생애사 아카이브 구축 등의 활동을 목표로 한다. 2015년 10월 12일부터 23일까지 <D. A. 오라>에서 <동기부여 Motivation>를 주제로 첫 무대를 선보였던 김선영 독립큐레이터는 현재 월산동에 대안 공간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더불어 그녀는 순천의 예술공유공간 <돈키호테>와 전남미술사 연구에 참여하고 있으며, 작년 전시에 이은 한국-필리핀 교류 두 번째 전시를 준비 중이다. 이 전시는 단순히 두 국가 간의 예술의 ‘물리적’교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장르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두 국가의 작가들이 공동창작을 통한 협업작품을 전시할 계획이다. <오버랩>의 지난 전시와 앞으로의 소식은 페이스북에서 접할 수 있다 : facebook.com/overlab2015 

13) 리좀은 출발하지도, 끝에 이르지도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있는 사이 존재이고 간주곡이다. 나무는 친자관계(filiation)를 이루지만 리좀은 오직 결연(alliance)일 뿐이다. 리좀은 ~와(et)라는 접속사를 조직으로 갖는다. 이 접속사 안에는 ~이 존재한다(être)라는 동사에 충격을 주고 뿌리를 뽑을 수 있는 힘이 충분하게 들어 있다. 노마디즘(nomadism)은 그리스어 ‘nomos(노마드)’- 유목민,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사람’- 에서 유래하는데, ‘목초지에서 풀을 뜯다’ 혹은 ‘목초지에 데려가서 그곳에 풀어 놓다’는 뜻이다.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 ; 자본주의와 분열증』, 김재인 역, 새물결, 2001, 서론 참조.

14) “예술가는 예술의 자율성을 위해 자유의 죽음, 그리고 자본 및 제도 속 스스로의 타락을 거부해야 한다. 이러한 예술의 자율성과 창조적 정신이 가능하기 위해 장관, 갤러리스트, 수집가, 미술관 관계자 등의 예술계 역시 개입해서는 안 되며, 강력하게 자신들의 역할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Lettre à Grand-Mère par Gérard Zlotykamien, Michel Ellenberger, Zlotykamien : Un artiste secret sur la place publique, Bordeaux, L’escampette, 2002. pp. 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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