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현상은 해석이 요구된다. 물론, 어느 부분까지 해석의 영역으로 둘 것인가에 따라 해석학자들간의 견해의 차이가 있겠지만, 현대 해석학은 텍스트와 관련된 문제만을 포함하지 않고, 해석하는 과정에 있는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이것은 의사소통의 언어적 혹은 비언어적 형식들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언어와 의미를 다루는 철학, 그리고 기호학과 같은 의사소통에 영향을 주는 것, 더 나아가 예술 영역까지도 포함한다. 해석하는 과정 속에서 진리를 발견한다는 것은 단지 현상 안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해석을 통해 현상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데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 1900-2002)의 해석학은 시작된다.
가다머에 의하면, 텍스트의 이해는 인간적인 세계에 대한 경험, 즉 결코 과학적 방법의 기술 문제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예술과 역사적 전통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언급했듯이, 지평들의 융합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지평은 완전하게 결합되지 못한다. 따라서 역사적이고 시간적인 간극, 그 간극을 존중하며 역사적 텍스트 또는 상황에 대해 마땅히 질문해야 할 적절한 질문을 찾아내야 한다. 텍스트를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텍스트의 의미에 대한 과학적이거나 학술적인 탐구에 그치지 않는다. 텍스트가 이해되도록 해석자의 현재 상황에 적용시키는 작업과 연관된다.
그렇기에 의미는 자신이 어떤 상황과 시대에 속했는가에 따라 다르다. 가다머는 이를 “각자는 지평(horizon)을 갖는다”고 표현한다.1) 여기서 가다머는 역사적으로 유발된 의식을 검토한다. 역사는 이해를 추구함에 있어 해석자는 이미 무언가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스스로의 기대를 형성하거나 아니면 기대를 좌절시키며 고통을 통해서 배운다. 즉 자기 자신의 역사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반성이다.2) 이런 상황이나 경험 속에는 그것이 역사이건 인격체이건 우리가 타자에 개입할 때, 더불어 타자에 대한 개방성이 함께 제시될 때 창조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논의를 위해 우리는 다른 철학자들 혹은 예술가들을 제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다머를 선택한 것 역시 단순히 그의 저서 『진리와 방법』의 중요한 의미뿐만 아니라, 격동의 시기 속에서 그가 지식인으로서 보여줬던 그의 태도 – 가다머 스스로가 그 시대를 ‘인생의 간막극(間幕劇)’이라고 반성했던 - 를 함께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가 해석의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가다머의 이론에 대한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흥미롭고 비판적인 논쟁을 통해 텍스트와 해석자의 관계를 기반으로 시작하는 연구는 결국 하버마스가 해석자들의 관계를 규정하기 시작하면서 의사소통행위론에 이르게 된다. 또한 막스 베버(Max Weber)의 합리적 근대론에 대한 이론적 반성에서 테오도어 아도르노(T. W. Adorno)와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가 계몽의 변증법을 논했듯이, 각 시대마다 가지고 있는 철학적 사유는 그 다음 세대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혹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첨병 역할을 한다.
실증적 사실에 대한 이해에 대해 역사가나 과학자보다는 예술가의 입장에 놓여 있을 경우, 그리고 다시 그러한 작품들을 재구성하는 기획자 혹은 더 나아가 관객의 입장에서 역사를 혹은 재현된 역사를 이해해야 할 경우, 우리는 역사의 장이 개념화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지를 창조하는 장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간주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현상과 본질 그리고 해석과 사실의 관계는 엄밀히 구별되지 않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필자가 제시할 두 전시를 통해 보여 질 수 있는 의미들은 현재로부터 미래로 뻗어나갈 수 있는 또 하나의 해석, 선택적 대화가 될 것이다. 역사는 예술에 영향을 미쳤고, 예술 또한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예술을 다시 해석하기 때문이다.
2.
현재와 과거사이의 긴장, 즉 거리는 오히려 해석을 풍부하게 하는 요인이다. 이러한 해석을 다양하게 보여주었던 예술 및 전시는 과거의 재생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통합하는 것이다. 가다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이 곧 텍스트의 지평과 해석자의 지평의 변증법적 과정이며, 이해의 본성이다. 물론, 역사와 해석자의 관계는 본래적인 개방성을 그 전제로 해야 될 것이다. 이것은 타자에 의해서 자신의 변형을 인정하는 것이다.
역사적•정치적 사건이 발생될 때마다, 예술은 다양한 형식으로 반응해왔다. 예를 들어, 프랑스 영화감독 필립 가렐(Phillippe Garrel)은 프랑스 68혁명이 일어난 해에 ‘폭로자’, ‘혁명의 순간’ 등을 제작했다. 감독은 이전의 궁핍한 환경에서부터 제작했던 독특한 실험적인 작품들 속의 인물들의 고독과 슬픔, 공허한 욕망을 극단으로 몰고 갔다. 인간에서 보여 지는 가장 고전적인 형태로 인물들의 감정 표현을 현대적 담론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또한 상황주의 예술가들이나 제라르 프로망제(Gérard Fromanger)와 같은 서술적 구상회화(la figuration narrative)의 작가들의 활동들은 계속해서 정치적•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이들은 단순히 역사를 재현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를 변혁하거나 일상적 혁명을 꾀하며 예술의 변화를 원했다.
그러나 예술이 역사적 사건을 보여주거나 혹은 역사적 사건을 대면하는 태도가 적극적인 앙가주망(engagement)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예술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대면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68혁명이 끝난 뒤, 근 10년 이래 아카이브 전시들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벽의 낙서들, 포스터들, 만화, 그리고 예술 전시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진행해왔다. 전자 – 낙서, 포스터, 만화 등 –의 경우, 대부분 익명으로 작업되었던 것들이었기 때문에, 관련된 학생들 및 작가들과의 관계를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구축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이 시기의 모든 흔적들을 다시 구축하고자 하는 역사적 사명감을 통해 제도권 미술관에서 재빠르게 이루어졌다. 예술 전시는 역사를 재이해하고, 그 시대의 예술품을 이후에 다시 규합하거나, 동시대의 작가들에게 과거의 역사를 재성찰할 수 있는 작품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작가들은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지 않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68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프로망제는 혁명 후 달라진 거리의 풍경 및 대중의 삶을 보여준다. <대중의 삶과 죽음>(1975)은 24시간 식당 영업(restaurant ouvert nuit et jour)이라는 팻말에서 소비사회와 자본주의의 비정함을 풍자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그의 <질문들, 존재>(1977) 시리즈는 작가 자신과 대중의 삶의 존재 이유와 본질에 대해 묻는다.
그림1. 제라르 프로망제, <대중의 삶과 죽음>, 1975, 캔버스에 유채, 퐁피두센터, 파리.
그림2. <질문들, 존재>, 1977, 콜라주, Finck-Beccafico 소장.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1981년 5·18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제도권에서의 정리가 30년이 다되어서야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여전히 놀랍다. 1980년 5월 17일 23시 전후로 서울에서는 김대중, 김종필 등을 비롯한 26명의 각계인사들을 급습하여 연행했다. 더불어 계엄군은 전북 14개 대학 및 전남 20개 대학에 은밀히 침투하여 대학 내 방송실을 무력 점거 후 작전을 개시했다. 예를 들어, 전북 금마에 주둔하던 7공수 중 일부대대가 동시 다발적으로 전북대, 원광대, 전남대, 조선대 등을 급습하여 점거한 후 학생들을 구타하며 연행했다. 전남대에서 흩어졌던 학생들이 금남로를 향하며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의 구호, '흔들리지 않게' 등의 노래를 부르며 비폭력 가두행진시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계엄군 및 사복형사, 전경 등이 연합한 상태로, 눈에 보이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무차별 구타하며 연행했다. 역사의 흔적은 잔혹하고도 잔인했다. 삼십년이 다되어 가지만, 여전히 이 운동에 대한 왜곡된 부분과 시각들이 존재하며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매년 5월이 되면 1980년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그리고 광주의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된다. 프랑스의 경우, 1968년 5월의 혁명이 지나고 10년 이내의 아카이브 전시들이 끝나면서, 68혁명의 정신은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 그리고 일상적인 삶에 영향을 미쳤다. 예술의 사회적•정치적•문화적 반영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되어 왔지만, 이들은 무엇보다도 특유의 비판적인 태도로 예술과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광주가 5•18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전시의 완성도를 갖추기 것은 ‘2010 광주비엔날레’에서 5·18광주민중항쟁 30주년을 되새기는 작품들이 출품되면서 일 것이다. 광주비엔날레의 전시흐름은 역사성의 구현이었다. 더 나아가 2013년 5월 광주시립미술관(관장 황영성) <오월_1980년대 광주민중미술>전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10년간의 광주전남지역의 시대적 분위기 속에 제작된 미술작품과 사료들을 구축했다. 1980년대 민중 미술을 주도했던 작가들의 작품, 판화작품, 미술단체인 미술패 토말, 광주시각매체연구소,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 등이 제작한 걸개그림, 1987년 이후의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다채로운 예술과 문화적 산물들을 제시했다.3)
광주시립미술관이 광주 5•18재단과 함께 매 년 5•18민주화운동 기념 전시를 기획함으로서 왜곡된 역사적 사실과 잊혔던 실천적 현장 미술을 대중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해왔다면, 2016년의 5•18민주화운동 기념 전시 <진실_비틀어 보기>4)는 국외의 다른 나라들과 교류전을 통해 5•18정신을 널리 알린다. 더불어 이 전시는 관객에게 지나간 우리의 역사를 상기시키고, 국외의 다른 국가들의 민주화 운동에 또 다른 흥미를 야기한다. 전시는 서구 열강들과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 이에 대항한 독립운동, 전쟁과 내전의 아픔이라는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 한국을 비롯한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아시아 5개국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민주, 인권, 평화의 문제를 상기시킨다.
<진실_비틀어 보기>,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제3 전시실
식민지 시대 인도네시아 발리인들의 저항의 역사를 다룬 만구 푸트라(인도네시아),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표현한 박태규(한국), 태국 역사를 관객 참여형식의 작품으로 제작한 수티 쿠나비차야논트(태국), 필리핀 국민의 민족의식 고취와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한 레나토 아불란(필리핀),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슬픔과 아픔대신 통일과 평화를 기원한 베트남 레(Le) 형제의 작품이 그들만의 역사적 해석이다. 이들은 “기억하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역사적 교훈과 “진실은 때때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때 선명하게 보일 수 있다”라는 사실을 재현한다. 변함없는 전시장 구성 및 벽의 색채는 아쉬움이 남지만, 5개국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과거의 비극적 역사를 보여주고, 관객의 이해를 통해 반성을 유발시키는 전시 내용은 역사의 문제를 계속해서 연장시킴으로서 5월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임종영 학예연구사가 직접 제시한 두 개의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의 편지는 관객으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정치적 상황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장치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흥미를 제공한다.
2013년부터 광주시립미술관이 본격적으로 민주•인권•평화 미술전을 개최하여 다양한 역사적 상황들을 해석하면서 광주시립미술관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면, 광주에서 5•18기념 전시는 점차적으로 다채로운 문화적•예술적 표현으로 확장되고 있다. 예를 들어, 무등현대미술관(정송규 관장) <영원한청춘의 도시, 광주 ‘아~ 무등이여’> 展5)은 광주 정신을 되새겨 보고 앞으로의 새로운 삶과 역사, 미술 혹은 예술세계의 패러다임을 찾아내기 위한 전시이다. 학예실장 한방임은 “김준태 시인이 “시간은 떠나지만 ‘역사’는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듯이, 우리들 가슴속으로 돌아와 오늘을 만들고 미래를 만들어 나감이 이번 전시의 개최 의미이기도 합니다.”라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이 전시에서 9명의 작가들은 무등의 광주 정신을 승화시켜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회화, 조각, 도자설치 등 20여점의 작품들을 출품했다.
또한 전시 연계프로그램으로 김치준 작가의 풍화무등 ‘너덜겅’의 개막식 퍼포먼스와 문학•미술•음악인의 밤을 위한 김준태 시인과 미술인의 만남은 전시를 다채롭게 만든다. 단순히 5•18 역사적 사건에 국한되지 않고, 작가들은 이후의 우리의 삶에 대해 다시 성찰한다. 대표적으로, 김성결은 정신없이 흘러가는 현대 사회의 흐름 속 마음의 치유 공간을 제시하며, 김영태는 생명의 산, 무등산에 얽혀 있는 우리의 체감된 기억과 땅의 감동을 사진 작업으로 재현한다. 또한 김치준은 천지자연의 흐름이며 질서인 무등을 통해 생, 죽음, 삶이 하나 된 변화의 실상을 보여준다. 박종석은 고암 이응노의 스승인 염재 송태회가 1921년에 증심사와 무등산을 오르는 감회를 재구성하며 순수한 무등산의 정취와 함께 세월의 흔적을 재현한다.6) 전시장 일면에 짝 펼쳐지지 않은 화폭(장지)의 주름은 무등산의 숨결을 느끼는 듯하다.
그림5. 김치준, <풍화 무등 ‘너덜겅’>, 도자 가변설치, 2016.
그림6. 박종석, <무등산 10경>, 장지에 혼합재료, 249x554cm, 2016.
3.
아트 슈피겔만의 《쥐》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는 이유만으로 독자가 이 만화책에 대한 흥미와 감동을 인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아트 슈피겔만은 새로운 표현 양식의 《쥐》를 탈고하기까지 14년이라는 긴 세월을 소요했다. 그가 만화라는 대중문화를 예술적 표현 양식의 하나로 끌어 올렸던 것은 그의 실험적인 양식뿐만 아니라, 그가 이야기 속에서 보여주는 역사에 대한 이해이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를 직접 체험한 아버지의 경험을 아들이 들려주지만, 그의 이야기 속에서 유태인은 단순한 대학살의 피해자이고 나치는 가해자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폴란드 부호 일가의 삶의 경로를 따라가면서 지옥의 문턱에 섰을 때 인간이 얼마나 비열하고 또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경험한다.
사실성과 객관성에 기인한 《쥐》는 소스노비에츠에서 아우슈비츠까지의 행로에 절망과 죽음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단순히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과거 사건이나 생존자들이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개인사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고 무시하고 타자의 존재를 말살시키려는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보편성을 표현했던 것이다. 프랑스 역시 1970년대 만화를 제 9의 예술로 규정(연극, 회화, 무용, 건축, 문학, 음악, 영화, 사진)할 수 있었던 것은 만화가 사회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다머의 역사에 대한 이해 방식, 더 나아가 해석자의 반성과 비판적 의식이 과거의 역사를 경험하며 타자와의 열린 태도로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아트 슈피겔만의 서술 방식에 있는 것이다.
“권력에 상상력을, 상상력에 권력을(L’imagination au pouvoir, pouvoir de l’imagination)” 의 프랑스 68혁명 슬로건은 이후에도 종종 예술의 정치적 표현에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예술가들이 권력에 좌절하지 않고 버려진 공간을 점유하며 불평등에 저항하는 예술적 상상력은 그들에게 권력이 되었고, 잉여 공간에 자리 잡고 예술의 사회적 참여를 실천하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정부의 집단 권력은 무상 임대라는 파격적 상상력으로 응수한 결과는 창조적 산물로 발현되었다. 물론 스쾃 운동이 시대적 흐름에 따른 변화가 있지만, 프랑스 문화정책도 이 흐름과 괘를 같이 하며, 예술과 대중들의 틈을 중재하는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의 모든 문제가 정치적 문제 혹은 사회적 이슈와 관련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러한 사회를 예술이 꼭 앙가주망의 형태로 풀어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고, 반성적 성찰로서 역사를 이해하는 현대인들이 정치적•사회적 문제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까지도 예술적인 실천이 이행될 때 역사는 다시 구성될 것이다.
5월의 해가 되돌아 올 때, 광주는 또 한 번 다양한 전시를 펼칠 것이다. 사회의 변화와 대중의 흐름을 인식하며, 예술이 5•18의 역사, 현재의 역사, 그리고 그러한 간극 속에서 오는 반성을 통한 미래의 역사를 재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에 우리는 우리의 시선으로만 그러한 존재들을 해석하지 않고, 좀 더 열린 관계 안에서 역사적 의식을 발현시킬 때, 반성과 비판의식이 우리의 전통을 역사화하지 않을까 희망한다. 우리의 역사는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해석’을 통해 하루하루 채워나가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미래의 지평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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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구 계몽주의의 산물인 과학적 사고는 인간의 잣대로 세상의 존재들을 해석하고 평가했다. 이성적으로 얼마나 잘 파악될 수 있느냐에 따라 ‘객관성과 엄밀성’이 결정되며 이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인간 주체가 아닌 세상 및 존재에 더 가치를 둔다. 세상은 우리가 어떻게 평가하든지 간에 이미 의미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통해 세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가 우리의 정신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하이데거에 의한 해석학의 재정립을 바탕으로 가다머는 기본적으로 철학적 해석학의 입장에서 근대의 미학과 역사이해에 관해 비판적인 평가를 제시하였다. 이에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은 현대 해석학(hermeneutics)을 기초 지은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 어떤 특수한 시점에서 보여 지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지평의 개념은 가다머가 후설과 하이데거에게서 빌려 온 것이다. 지평은 주체가 그 안으로 움직여 가는 것, 그러면서 주체 자신과 함께 움직이는 어떤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지평은 언제나 움직임 중에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석자에 의해 텍스트를 읽는 작업은 역사적 의식을 발생시킨다. 특히 그는 인간의 ‘이해’ 과정을 논하면서 인간의 정신문화가 과학적 방법에 귀속될 수 없음을 밝히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해석의 원리들을 마련하는 실천적 영역보다는 주로 ‘이해’라는 현상 자체의 원리를 탐구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가다머에게 ‘이해’란 그것 또한 하나의 역사적 사건(Geschehen)으로서 고정되지 않고 역사적 변화와 더불어 움직이는 하나의 ‘운동’이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진리와 방법 1』, 이길우 옮김, 문학동네, 2012, 참조.
2)하버마스가 가다머의 이해행위에서 작용하고 있는 반성의 힘을 잘못 파악하고 있음을 비판하는 데에 대한 논의는 이 글에서 제외한다. 하버마스는 의식이 역사성을 가지고 어느 주어진 상황 하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 어떤 역사로부터 초월한 관점이 해석자에게 허용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의식은 자신의 발생사를 돌아보고 추적하여 자신의 선입견의 근원, 즉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전통의 뿌리를 살펴봄으로써 그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이것이 정신의 반성의 힘이고 또한 비판의식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가다머에게 있어서 이해란 과거와 현재가 중재되는 사건이기 때문에 선 판단의 재평가와 그 원천인 전통의 재인식이 중요하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이해의 조건으로서의 선판단의 구조분석이 올바르다 하더라도 그 속에는 비판적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위르겐 하버마스, 『인식과 관심』, 강영계 역, 고려원, 1996 ; 위르겐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이론 1, 2』, 장춘익 역, 나남출판, 2006 ; 윤평중, 『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 교보문고, 1997, 참조.
3) <오월_1980년대 광주민중미술>, 2013.05.01.~2013.07.21., 광주시립미술관 1,2 전시실, 도록 참조.
4)<진실_비틀어 보기 The Truth_To Turn It Over>,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3,4 전시실, 2016.05.10.~08.15, 광주시립미술관 : 광주시립미술관(조진호 관장)과 5•18기념재단(차명석 이사장)은 5•18민주화 운동 36주년 기념. 2016 아시아 민주•인권 평화 미술전 <진실_비틀어 보기>를 8월 15일까지 전시했다.
5)영원한 청춘의 도시, 광주 ‘아-무등이여’, 2016.05.18.~2016.08.10., 무등현대미술관.
6)<영원한 청춘의 도시, 광주 ‘아-무등이여> 도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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