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자유를 향한 존재의 함성: 김성결의 《Two Face》 展

1.

2017년 9월 29일부터 10월 10일까지, 광주 금호갤러리는 김성결의 개인전시 《Two Face》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김성결이 유스퀘어 문화관에 자리 잡고 있는 금호 갤러리의 2, 3관의 공간에 30 여점의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인 네 번째 개인전이다.

김성결은 《Login》(2014)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인간의 자화상을 그려나간다.1) 강렬한 색채와 거친 붓놀림을 통해 표현된 초기의 작품들은 표현주의적인 경향이 강하다. 그의 인물들은 한편으로 가시세계에서 비롯된 형상들로, 다른 한편으로 꿈속이나 눈을 감은 상태에서 재현된 형상들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렇게 구성된 이미지들이 하나의 통합된 장을 완성해 나갈 뿐이다.

풍부한 색과 활기찬 표현 및 질감은 거칠고 강한 형태로 드러난다. 이러한 그의 표현 방식은 인간의 삶 속에서 사회적인 위치 및 관계, 사회적 구조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거나 속이며 억눌러진 인간의 감정을 순수하게 표출하는 데 있다. 이러한 모티브 및 회화적 표현 방식은 《꿈틀거리는 형상》(2016) 전시에서 두드러진다.

이번 전시에서 나는 김성결 작가가 인물의 조형적 배치 및 전통적인 표현주의 형식에 의존하기 보다는 더욱 자신의 진솔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음에 주목했다. 이를 위해 김성결은 전통적인 구성 방식을 버리고 짜여지지(정립되지) 않은 배치를 모색한다. 더불어 그는 ‘비현실적인’ 색채로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즉, 작가는 형상을 자유롭게 하는 방식, 합리적 요소를 배제하며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기 위한 ‘날 것 그대로’의 방식을 보여준다.

자아, 진솔한 대면

그림1. 엔소르, <가면과 함께 있는 자화상>, 1899, 캔버스에 유채, 120x80cm, 메나드 미술관, 일본.

작가 김성결은 자신의 모습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갈등의 주체로서 형상화하면서 자신을 철저히 관찰대상으로서 묘사한다.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경계선상에 있는 자신의 상황들을 예술로 선보이며 지독하게 정직한 표현으로 나아간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자신을 ‘표현’하기보다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 및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진솔하게’ 드러내 보이며 자신을 내보이는 그림을 그린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가 말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인간은 삶의 조건변화에 적응하면서 불가피하게 여러 개의 가면으로 바꾸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문제는 가면이 더욱 현실적이고 실질적이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가면을 벗은 인간의 모습이 낯설 뿐이다. 초상화가로 유명한 벨기에 표현주의 화가 엔소르(James Sydeny Ensor, 1860~1949)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가면이나 해골을 통해 표출했다. 일반적으로 내면을 숨기거나 존재 자체가 사라진 상태(죽음)의 상징물로서 가면 혹은 해골을 묘사하지만, 그는 이 둘을 더욱 생생한 내면의 표정을 보여주는 데 이용한다. 예를 들어,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1899)(그림1)에는 온갖 표정의 가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기괴하게 비웃거나, 뒤틀어져 있거나, 초점을 잃고 있는 등의 가면 표정, 혹은 섬뜩하게 쳐다보는 해골들 사이에서 화가 자신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다양한 표정의 가면과 해골로 나타난 화려한 주변인들의 표정은 오히려 죽음과 위악, 탐욕과 위선의 가면으로 묘사되어 있다. 추악하고 폭력적인 탐욕스러운 몰골들 가운데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화가 자신만큼은 온전한 인간으로 표현되어 있는 듯하다.

앤소르가 추악한 몰골들 가운데 자신만은 온전한 인간으로 표현함으로써 현실에서 외면당한 자신을 표현했던 것과 달리, 김성결은 자신의 모습을 타인들의 무리 속에 동일하게 묘사한다. 다시 말해 엔소르가 자신의 위치를 가면과 해골들 사이에서 고립되고 벗어나고자 하는 ‘다른’ 존재로 그리고 있다면, 김성결은 자신을 그러한 무리 속에 집어넣는다. 즉, 그는 철저히 자신의 자아를 객체화하며 묘사한다. 따라서 그의 내면의 감정과 표출된 화면은 순수하다.

그림 2 <poker face>, 2017, acrylic on canvas, 162.2x130.3cm.

<포커 페이스 poker face>(2017)(그림2)에서 가식과 위선으로 포장된 앞모습과 대비되는 뒷모습이 더욱 솔직해 보인다. 일차적으로 자신의 뒷모습을 형상화해서 작가 자신이 그들(화면 속 얼굴들의 표정)을 바라보지만, 이차적으로 그 인물은 ‘밖’에서 응시하는 관람객을 자신의 경험(화면 내 혹은 현실 안에서 작가가 겪은 감정)으로 초대한다. 타인의 시선에 묶여 사는 현대인의 위선 속에서 저항하는 대비적인 표현방법과 달리, 작가는 인물의 뒷모습을 통해 가식을 넘어 ‘진정성’이 결여된 피상적인 현대사회의 인간관계를 그대로 내보인다. 가면을 쓴다는 것, 어떤 대상의 본질을 감추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또 다른 대상’을 지향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김성결은 뒷모습 혹은 인물의 얼굴을 지움으로써 위선과 가식에 대한 단상을 보여준다. 그에게 얼굴의 지움 혹은 불명확한 표현은 단지 ‘숨기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위를 하는 자아 그 자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그러한 무리 속에 자연스럽게 묶여 있는, 오히려 그러한 위선을 무거운 짐으로 지고 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그림 3 <self-portrait>, 2017, 162.2x112.1cm, oil on canvas.

이렇듯, 이번 전시에서 김성결은 자신의 자화상을 다시 선보였다. 이 작업에서 그는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의 <자화상>(2017)(그림3)에서 흰자위로 가득한 색채로 겹겹이 쌓여 있는 눈에 흔들리는 눈동자, 이마와 얼굴 전면에 겹겹이 쌓여진 색채, 비뚤비뚤한 입꼬리,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코의 형태가 있다. 그의 흔들리는 감정만큼 섞여 있는 색들과 긁어진 흔적들이 정신없이 섞여 있다. 얼굴의 표정과 색, 낙서와 스크래치로 상처를 입은 것 같은 표면, 이 모든 화면의 질감이 자신이 처한 두려움을 격렬하게 표현한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들이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들은 관련된 집단들에 의해 목적에 맞게 ‘만들어진다.’ 그러나 작가가 고민하는 공포 상황, 즉 ‘위협’은 그러한 상황을 인간이 종종 실용적으로 수용해버리거나, 일관된 낙천주의를 보이던지, 냉소적 염세주의로 나타나던지, 자발적 소외로 치닫든지 간에 서로 얽혀있는 ‘상황 그 자체’에 있다. 작가는 그러한 상황에 대해 어떤 해결을 제시하기 위해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그 자체에 놓여 있는 자신의 숨 가쁜 고민을 보여준다. 우리는 수많은 색으로 뭉그러져 있는 자신의 얼굴처럼, 그 관계성(상황) 안에서 끊임없이 치열하게 고민하는 작가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작가는 그러한 감정에 충실하며, 다양한 표현 행위를 통해 내면의 모습을 화면에 표출한다. 따라서 나는 김성결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주요한 회화적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회화적 방법, 자유 구상

김성결은 적극적인 감정 표출을 위해 색채와 질감의 표현을 이용한다. 표현주의 회화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감정 표출은 내면의 비틀어진 상태나 절망적 심정을 왜곡된 형상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김성결은 색채와 질감으로 자신의 내면을 표출하고, 표출된 감정을 다시 불러오는 방식을 통해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화면 안에 구축한다. 김성결의 첫 개인전부터 드러나고 있는 현실의 형태(인물의 얼굴)를 왜곡하거나 이성적 논리를 배제하는 방식, 촘촘히 찍어나가거나 꿈틀거리는 점과 색면을 이루는 작업은 자신만의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 속에서 그는 마지막에 검은 선으로 인물과 배경을 정립해 나가며 표출된 자신의 감정을 ‘다시’ 불러온다. 이성적 논리를 배제한 채 정립되거나 계획된 구성없이 작가는 점, 선, 면의 방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채워나간다. 이 회화적 방법은 <같은 마음 다른 생각>(2015), <웃기는 짬뽕>(2015), <입장차이, 2016>, <눈칫밥>(2016) 등의 작업으로 구체화된다.

또한 작가는 자신의 모습을 뭉개고, 으그러뜨리고, 지우고, 덧칠하며 덮어버리며, 흘러내리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표현 방법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에서 더욱 격렬하게 나타난다. 두껍게 칠한 층을 정신없이 만든 후, 거칠고 심술궂게 그곳을 헤집고 긁어낸다. 김성결은 짓누르고 긁거나 낙서하는 행위(graffiti)를 덧붙이며 그의 화면 속 인물을 보통 인물보다는 괴물로 주저 없이 그린다.(그림3) 그의 인물은 불쾌하고 조잡하게 묘사되었다. 그러나 가공되거나 꾸며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은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민낯 그대로의 존재감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이 주는 힘은 강력하다. 이는 어색하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구성, 생생한 색감 등에서 나온 것이다.

그림 4. <self-portrait>, 2017, 53.0x45.5cm, acrylic on canvas, No.1-12.

그의 색채와 질감의 표현에 더욱 주목해보자. 표면을 긁거나 문질러 만든 극단적인 촉감은 부드럽게 민 화면과 형식적으로 서로 날카롭게 대조된다.(그림4) 그것은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불안을 고조시키며, 다시 제 곳으로 돌아온다. 부드러운 표면과 거친 표면이 공존해 있는 그의 작품들은 배경과 인물의 관계에서 드러나며, 색채의 대비에서도 드러난다. 거칠고 강한 붓 터치와 세련된 색상을 대비적으로 병치하며 갈등과 모순을 일으키는 그의 표현 능력은 재료의 질감과 물성이 드러나는 표면을 통해 그의 이질적이고 복잡한 감정의 선들을 드러낸다. 김성결의 개성적인 색채는 내적인 불안, 공포, 고통 등의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도구이다. 다시 말해 그의 개성적이고 독특한 ‘비현실적인’ 색감은 감정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표출된 감정을 사라지게 하는 도구이다. 그 자신의 내면의 감정의 모순처럼 말이다. 즉, 자신에게 놓여진 ‘위협’을 저항하고자 하는 내면의 울림 속에서도 그대로 ‘수용’해버리는 작가의 끈질긴 고민처럼 말이다. 그의 화면 속 정렬된 표면 및 세련된 색채(특히 배경)와 거친 표면(특히 인물의 얼굴)이 공존하는 것은 바로 자아 그 자체, 더 나아가 그(인간)의 세계(현실)의 모순을 드러내는 데 있다.

이렇듯, 세련된 색채로 정리된 배경 위에 덧칠하며 두텁게 중후한 질감을 만들어내고,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적인 행위(sauvagerie)를 통해 작가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와 로베르 콩바스(Robert Combas(1957~)가 의미를 창출하기 이전에 형상을 부여하려는 자유를 획득하며 모든 규범화되어 있는 틀에서 벗어나 그렸던 것처럼, 김성결 역시 화폭에 자유로움을 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뒤뷔페는 세련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스타일, 아스팔트 에멀션도료를 섞어 두텁고 겹겹이 바름으로써 거친 마티에르를 만들어내며 긁거나(graffiti) 그리는 행위로 반미학적이었다. 콩바스 역시 표현 대상의 영역을 확장시키며 이미지와 문자가 엉터리고 얽혀 있지만,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는 절대적으로 자유롭다.

두껍게 바른 물감(impasto)과 배경, 인물의 형상과 얼굴의 무정형을 통해 김성결 역시 날 것 그대로의 모습, 표현이 그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그는 고상하고 세련된 작품에 연연하지 않고, 인간의 사회적 체면과 예의 뒤에 숨겨져 있는 근본적인 사실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처럼, 그림 그 자체의 야만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뒤뷔페와 콩바스의 그림이 여백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숨 막히게 빼곡히 차 있다면, 김성결은 매끈하고 세련된 바탕과 인물의 거친 촉각적 질감을 대비적으로 구현한다.

두 개의 얼굴, 현대인의 자화상

자아와의 진솔한 대면에서 출발했던 김성결은 <신사>, <메이크업>, <포커 페이스> 등의 시리즈를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즉, 그는 타인을 의식한 화장이나 의상, 인위적 만남을 통한 인상 등 자신이 아닌 남에게 보이기 위한 거짓된 얼굴을 화폭에 드러냈다.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과 내면적 감정에서 출발한 김성결은 인간관계 상황에서의 현대인들의 행동들에 더욱 주목한다.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작가는 현대 사회에서 관계 형성의 과정을 통해 내면의 감정을 속이며 가식의 얼굴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단면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인간들은 삶의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기든스(Anthony Giddens)가 언급한 것처럼, 현대사회에서는 안정된 자아를 유지하기 힘든 것인가? 개인의 사고의 정체성이 복잡한 현대사회의 특정적인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인가? 현대인이 온갖 우연적 요소와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판단하며, 자칫 분열되기 쉬운 자아를 통합하고자 노력해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작가는 첫 개인전 이래 계속 등장한 ‘자화상’, ‘포커페이스’ 등에서 개인(특히 자아)의 ‘내면’에 집중했다면,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자신을 타자들 사이에 위치시킨다. 작가는 자신의 맨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현대인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억압된 채 쌓여가는 감정에 숨겨져 있는 감정을 끄집어냈다. 더 나아가 그는 본질적인 감정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익숙한 감정 표현이나 위선으로 자신의 감정을 세상 사람들 앞에 내보이는 시선들에 주목한다. 그러한 감정은 서로들의 ‘관계’에서 혹은 ‘사회구조’에서 더욱 가식적으로 변한다.(그림5)

그림 속에 드러나는 김성결만의 인간은

배려에 서툴고,

눈치 보며,

말해도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

말하면 미움 받을 거라는 두려움, 비웃을 거라는 지례짐작,

‘좋은 남자’는 오히려 억지스러운 환상이 된다.

회화적 방법을 달리하며 심층적으로 표현된 이번 전시에서 김성결은 더욱 거칠다. 자유로움 속에서 뱉어낸 외침, 작가는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작가의 자유로운 표현 욕구는 결코 세련되어지거나 정련되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두껍게 쌓여 올린 유화의 흔적들에 ‘긁음(graffiti)’이 더해지며, 그의 강렬한 붓 터치와 함께 화면은 더욱 거칠고 지저분하다. 사람 사는 세상의 온갖 지저분함, 소란함을 덮어버리고자 하는 듯, 그의 화면은 공격적이며 무례할 정도로 날 것 그대로다. 작품 속 많은 인물들을 보통 인물보다는 괴물로 주저 없이 그린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자유롭기 때문에 정직할 수 있다.

그림 5 <눈치게임>, 2017, acrylic on canvas, 130.3x162.2cm.

남을 속여서라도 이익을 얻으려는 인간의 이기적 행동, 즉 배후에 있는 인간의 악한 마음과 서로 의심하며 경계하는 인간의 마음이 있다. 물론 괴물을 만들어 서로를 위협하는 체제를 형성하려는 경향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인간 내부에 있는 본래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의도와 달리 두려움의 구조는 외부의 무리가 만들고 유지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공포체제는 모든 사람의 내부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그러한 체제가 필요한 일부 집단이 출현하는데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집단은 인간 내부의 어떤 이기심과 결합되면서 한 사회의 구조와 연결되는 것이다. 김성결의 <눈치 게임>(2017)(그림5)에는 속임을 당하는 자와 속이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화면 속 인간들 모두는 서로 눈치를 보는 영원한 굴레에 얽매여 있다. 마치 사르트르의 「닫힌 방」에 앉아 있는 인물들처럼, 서로의 시선에 의해 객체화되지 않으려고 타인의 시선과 영원히 투쟁하듯이 말이다. “타인의 시선은 지옥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 굴레에 벗어나지 못한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기기만(mauvais fois)에 빠지는 것일까? 작가는 인간의 악한 본성 때문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인위적으로 형성된 다른 요인들을 부추기며, 개개인이 위선과 가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 있다는 문제의식을 끌어낸다.

5.

부드러운 표면이 종종 드러났던 회화의 가시성은 뭉그러트리고, 긁어버리고, 끊임없이 질척거리게 덧칠하며 감정적 발현성으로 기존가치의 의미를 무시하듯 덮어버리는 형태로 나아간다. 이러한 처절한 ‘현실’을 그려내는 데도 절망이 깃들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의 색채에서 오는 ‘비가시적’이고 ‘상상적인’ 요소들, 그리고 표출된 감정을 다시 불러오는 그의 회화적 방식(바탕면의 질감, 굵은 검은 선, 독특한 색채 등)때문이다.

김성결은 위선, 가식, 눈치 등의 현대인들의 행위 속에서 보이는 감정들에 대해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그의 긁고, 지우고, 낙서하며 표현되는 날것 그대로의 행위와 정돈되어진 면 혹은 화려한 색채에서 보이는 화면의 역설적인 표현에서, 그리고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그의 자유로운 형상에서, 감정을 표출하고 표출된 감정을 정리하는 작가 내면의 끊임없는 모순의 발현 속에서 발견되듯, 고립된 자아의 내면에 희망의 근원을 포괄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실려 있다.

 

1) 그의 작품 과정은 세 번의 개인전과 석사학위 청구전시를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Login>, 갤러리 스페이스 영, 2014.03.19.~2014.04.01.

<신사의 품격>, 무각사로터스갤러리, 2015.06.22.~2015.07.01.

<꿈틀거리는 형상>, 조선대학교미술관, 석사학위 청구전, 2016.05.16.~2016.05.20.

<스크래치 이후의 얼굴>, 주안미술관, 2016.11.02.~2016.11.12.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