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옥동패, 독학자, 덕후 그리고 밴드들


산업화 시대 독학자들

전태일은 가장 잘 알려진 독학자다. ‘노동법’을 홀로 익혀야 했던 평화시장의 노동자 전태일은 이후 ‘노동자의 밤’을 개시한 상징이다. 통금을 온통 잠으로 채색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읽고 쓰기를 지속했던 전태일은 노동자들이 그저 명령을 묵묵히 따르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권리와 몫을 위해 싸우고 표현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렸다.(표지 이미지 설명)

: 프롤레타리아의 밤과 동시대 예술적인 것의 지형

예술은 전문가 체제 아래에서만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할 것 없이 근대 미술사가가 이루어지는 내내 ‘독학자’가 제도미술 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사례들은 차고 넘친다. 미술이 제도의 성립으로 이루어지지만, 제도에 기입되지 않는 방식으로 미술적 실천을 했던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옥동패’라고 부르거나 ‘독학자’로 이해해온 바가 있으며, 산업자본주의 체제에서 다양한 노동자들이 자신들에게 드리운 ‘밤’을 예술적 실천들로 가꾸었으며, 최근에는 ‘덕후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작업들을 수행하고 있다.

아무도 가르치지 않는 지식 그리고 예술

생애사적 주기의 변동이 급격하게 일어나는 시기다. 이 때문에 기왕의 모든 문턱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강고한 경계에 조금씩 구멍이 뚫리는 중이다. 이를 초래한 것이 정치체제이거나 자본주의 시스템이거나 간에, 생애사적 주기가 달라졌다는 것은 단순한 사실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그간 이루어진 삶의 사소한 관계에서부터 제도나 시스템 전체가 일거에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테면, 예술이 제도나 전문가에 의해 독점되다시피 구성되어 왔다면, 이런 방식에도 일정한 한계가 발생한다는 것이고, 예술적 가치가 특권적인 집단이나 원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도적 학업을 경유함으로써 형성된 예술이 이미 예술이 어떤 것인지를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암암리에 강제하고 규정하는 효과들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제 선험적으로 주어진 예술적인 것의 범주가 문제적인 것으로, 혹은 도전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어진 정보가 넘쳐 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로부터 전수받거나 사사받거나 가르침을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하고자 한다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마치 자크 랑시에르가 ‘지성’이 누구에게나 주어진 평등한 조건(내가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능력)이라고 한 것처럼, 예술적 실천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며,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도 가르치지 않는 것을 스스로 배울 수 있고 또한 스스로를 가르치질 수 있는 역량들이 이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시대에서 생성되고 있다면, 미술대학이 위기에 직면하거나 제도 미술의 위기담론은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닐지 모른다. 물론 제도 자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신자유주의나 이에 편승한 국가기구들의 무책임한 정책들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말이다.

역사적 독학자들과 제도의 가장자리

역사적 변동의 과정에서 제도 교육의 과정을 이수하지 않거나, 제도적 경계의 가장자리에서 예술적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있다. 식민지 시기에 한정해서 봐도 이들 존재의 활동은 여러 예술적 장에서 확인된다. 가령,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각 지역의 자생적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옥동패’라 불리는, 이름을 갖지 못한 예술가들이 근대미술사의 시작의 자리에 그 내력들을 보존하고 있다. 문학의 경우에 ‘최서해’ 같은 인물 역시 독학으로 ‘소설’을 쓴 작가로 1920년대 한국문학사에 있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현웅이나 박수근 같은 널리 알려진 ‘작가’도 실은 제도적 교육의 가장자리에서 혹은 순수미술의 영역 바깥에서 활동을 하면서 예술적 성취를 이룬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런 비제도적 교육과정을 통해 예술가로 이해된 존재들은 동서양 예술사에서는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난다.

이런 사정은 1970년대 이후 보다 광범위하게 확산된다. 한국사회가 산업화되면서,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의 실천들이 이루어진다. 이들은 하나로 종합되지 않는 다종다양한 글쓰기, 이미지, 음악을 남겼으며, 노동 현장이나 쟁의 현장에서 함께 향유되었다. 문제는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들의 자율적인 활동(이를 반드시 예술이라고 규정하는 게 온당한 것일 수는 없지만)이 당대의 지배적 문화논리에 의해 아직 예술이 아닌 것이거나 예술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받았다는 사실이다. 광범위하게 형성된 노동자들의 자율적 활동들이 미숙하고 미진한 것으로 처리될 때, ‘노동자’를 대표하는 존재인 ‘시인’과 ‘소설가’로 특정한 예술적 실천을 하는 ‘노동자’를 명명(통상적으로 ‘재현’, 곧 노동자들은 대표되는 사람들에 의해 은폐되면서 그림자로만 남으며 대표되는 존재를 떠받치는 효과로 존재하기를 그친다)하거나 그저 그리기와 만들기를 했을 뿐인 사람이 수행했던 실천들을 ‘민중미술가’들로 하여금 그러한 자율적 활동을 대체해버린다.

흥미로운 것은 노동이 삶 자체를 노동으로 조직하는 2000년대 이후에 이르면, 80년대까지 차단되어 온 노동자들의 (예술적) 자율성은 신자유주의 시스템 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개방’된다. 이런 경향성들은 공연장은 물론이고 시위의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각자가 나름의 방식으로 조형언어를 구성하고 발굴해서 피켓을 만들어 누군가를 응원하거나 조형물로 제작해서 지지를 표하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촛불시위의 흐름 안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이미지들이 ‘광장’에 ‘전시’되었다는 사실은 무척 중요한 지점이다. 각종 피켓이나 이미지, 깃발, 조형물들을 광장으로 가져왔으며 자신들의 권리와 표현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서슴없었던 것은 예술적 이미지가 더 이상 독점적인 계를 구성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최근 길거리에서 주은 쓰레기를 투명 상자에 담아 <이베이>에 업로드 하여 예술 작품으로 간주하여 판매하려 했던 사건은 예술이 특권적인 담론이나 조건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되어야 한다.

삶과 예술의 밀착 : 무용성이라는 실천

예술의 자율성이 그것의 ‘기능’과 관계없이 자립할 수 있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예술과 삶은 일정한 거리를 갖는다. 예술은 실용성을 갖지 못하는 ‘무용한 것’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은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기능’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의 직접적 쓸모가 있다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적 행위는 무용성에 기반을 둔 실천이다. 근대미학에서 ‘도자기’가 예술로 취급되지 않는 것도 이런 점에서 비롯된다. 주의해야 할 것은, 예술의 자율성이 예술이 현실의 지배적 원리로부터 독립해 있음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왔고 받아들여져 왔다는 것이지, 예술적 실천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달리 말해, 예술의 자율성은 현실의 지배적 논리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고, 현실이 감추거나 은폐한 영역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있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는 현실과 유리된 것으로서 예술이 아니라, 지배적 현실은 아니지만 예술이 잠재적인 것으로서 삶 혹은 현실과 밀착해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적극적으로 전유해보자. 만약, 예술이 잠재적인 것을 출현하도록 만드는 원리 일체를 통칭하는 어떤 영역이라고 과감하게 규정해 볼 때, 기능적이지 않은 행위와 실천들 일체는 예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잠재적인 현실 곧 아직 현실화될 수 없거나 지각될 수 없는 세계와 접속되는 한 그러하지만 말이다. 시스템에 맞는 신체로 조직하려는 논리가 강화되고 있지만, 신체의 행위는 조직과 체계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불화할 수밖에 없다. 계산의 영역을 벗어나거나 수치화되지 않는 불필요한 신체의 행위는 그러므로 예술적인 것을 예비하는 것이거나 예술 자체로 사고해볼 수 있다. 가령, 퍼포먼스(performance) 아트는 행위를 예술적 범주로 규정한 것이지만, 그런 차원을 넘어 이를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면 현재 내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본성이나 본래적으로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니라, 그러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행위를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현재적 삶은 그 사람이 그렇게 살도록 원해서가 아니라, 남성으로 살아가도록 혹은 여성으로 살아가도록 ‘수행’할 뿐인 것이고, 바로 이 때문에 물질적이고 시각적인 삶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행이 본래 그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자기를 예술적으로 항상 생산한다고 고쳐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신체의 행위가 ‘목적’이나 ‘기능’을 달성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끊임 없이 신체의 생명력을 갈취해서 이를 화폐로 전환하고자 하겠지만, 신체는 그러한 논리로부터 한 걸음 비켜설 수밖에 없다. 쓸데 없이 손가락을 꺾어서 우두둑 소리를 내거나, 손 방귀를 끼거나 손가락을 부딪혀 소리를 내면서 지배적 논리를 순간적으로 정지시키는 ‘유머’를 구사할 때, 우리는 그야말로 ‘예술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환전’되지 않는 신체의 능력이 발굴되고 발명된다면 우리 삶은 이전보다 더 자율적이고 더 민주적인 역량을 고양할 수 있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