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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미술관(하정웅미술관) 2017 청년작가초대전: 《신호윤-피안의 섬》

들어가기 전

광주시립미술관(하정웅미술관)은 《신호윤-피안의 섬》 전시를 2017년 12월 19일부터 2018년 2월 25일까지 선보였다. 전시를 기획한 박영재 학예연구사는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를 통해 신호윤의 작품 세계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신호윤의 주 작업 재료인 종이에 대해 설명하며, 2005년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을 <설정(Creation)>, <수상한 꽃(Strange Flowers)>, <본질은 없다(There is no essence)>, <군도(Archipelago> 의 연작으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연작시리즈를 통해 그는 신호윤이 개인과 사회, 내부와 외부, 부자와 빈자 등의 사회적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도록은 기획문의 설명과 달리, 반대로 <군도(Archipelago)>, <본질은 없다(There is no essence>, <수상한 꽃(Strange Flowers)>, <2와 3사이-Pieta (Between 2 and 3-Pieta)>의 연작순으로 편성되었다. 각 연작의 설명은 학예연구사의 분석이 아닌 작가의 노트에 기인하고 있다. 도록의 구성은 일반적으로 기획을 담당한 학예연구사가 전시 기획 의도 및 작가 연구에 맞게 편성하며,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개별 작품 설명을 작성하거나 전체 설명을 작성하는 방식 등으로 이루어진다. 미술관이라는 공식적인 기관의 중요성은 전문 학예사가 작가 연구와 작품 연구를 토대로 1차적 자료에 대한 정확한 연구 자료를 축적하며 작가의 작업 세계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을 남기는 데 있다. 이에 미술관 도록은 일반적으로 전시 기획을 준비한 학예사의 연구자료, 기획의도 및 설명문, 그리고 작가의 작품을 연구할 수 있는 연구자들(미술사학자, 미학자, 평론가)의 글, 작가 노트 등을 기획자가 전시에 맞도록 편성한다.

그렇기에 전시의 선정과 그에 따른 도록이 중요하며, 미술관에서의 전시는 작품 및 전시 그 자체의 평가를 인정받을 수 있는 장이자, 한편으로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전문 학예사의 조사 연구가 함께 진행됨으로써 기록물 및 역사물로서의 가치가 발생될 수 있는 장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역의 주요 미술관이 작품 설명에 대한 내용 및 작품 세계를 연구한 결과를 수록하는 것보다 대부분의 내용을 작가의 노트에 의존했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군도(Arcipelago) 속 인간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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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전시장은 미술관 입구와 마주하고 있어 관객이 전시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 곳과 마주한다. 그 곳의 붉은 색 인물 형상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채로 관람객을 기다린다. 낮은 천장으로 인해 바닥에 거의 닿을 것 같은 붉은 인물은 공간 전체를 가득 메울 정도로 위엄 있고, 강인해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갈수록 살랑거리는 낱장들의 형태가 종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관람객은 인물의 거대함에서 오는 충격만큼이나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그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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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신호윤, <Archipelgo-Island 006>, 2017, 1500x500x250cm, 종이 © 신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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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붙어 찢어질 듯한 나약한 낱장들은 왜 그런지 묵중한 무게감으로 인해 곧 무너질 듯하다. 거대한 인물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의 흔적과 단순히 붉은 종이라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이 인물에서 금방 찢어질 듯한 유약함을 느낄 수 있지만, 반대로 조금 거리를 두고 이 종이 인물을 관찰할 경우, 종이는 강한 철 구조물과 같다. 강인한 석재 및 대리석에서 인간의 영혼을 담아내고자 하는 전통적인 조각의 방식에서 벗어나, 신호윤은 인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했다. 즉, 다루기 어려운 물질 속에 속박되어 존재하는 인간의 생명력을 해방시키고자 했던 전통적인 조각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가벼운 존재로 보일 수 있는 종이를 통해 인간의 묵직한 존재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따라서 종이의 가벼움은 무거움에 반대되거나 나약함의 의미로 쓰이는 게 아니다. 종이는 불필요한 요소가 제거되어 얇고 가는 것이지만, 가냘픈 선과 얇은 두께에 의존해 형상을 이루어가면서 신호윤의 인물은 나약함과 동시에 묵직하고 응축된 기를 담아낸다.

관람객과 작품으로 꽉 찬 전시장에서 웅성거리며 대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거대하고 묵중한 질감을 보여주는 붉은 인물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우리 자신을 곧 고요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조각의 특성상 회화적이고 문학적인 요소를 담지 하는 데 어려움이 많지만, 신호윤 작가는 자신의 인물 형상을 통해 자신만의 고독을 즐기는 방식(내적 성찰), 사회 속 인간(외적 성찰), 그리고 문명사회의 문제 등과 같은 ‘인간’과 ‘사회’의 굵직한 주제에 접근한다. 우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현대 사회 속에서 인간 존재에 대해 고찰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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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명사회에서 불안과 고독감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일반적으로 ‘고독한 군중’이라 말한다. 이 표현에 대해 좀 더 세심히 살펴보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생산구조, 소비 및 여가를 부추기는 대중매체, 더욱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구축되는 도시 환경의 변화 등에 맞춰 살아가는 인간(자아)은 그러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타인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돌이켜 본다. 자신을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도록 하는 경향은 대중매체를 통해 더욱 고찰된다. 자아는 대중매체 속 보이는 타인들에 의해 자신을 규정한다. 자아가 타인에 의한 시선에 지배당하면서 세상의 흐름에 자기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신을 향한 시선이 점점 더 사라지면서 자아는 고독해진다. 이러한 고독감에서 벗어나고자 자아는 군중 속으로 섞여 든다. 그렇지만 군중 속 자아는 오히려 더 고독하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 속에서 기다려지는 그 시간이 비생산적으로 비어 있는 시간, 즉 혼자만의 시간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다시 타인 속으로 섞여 들어간다. 이 과정이 바로 자아가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방식이다.

이 순환적 고리를 끊기 위해, 특히 외부적 삶과 타인의 시선을 요구받으면서 산출되는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1813~1855)는 역설적으로 고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에게 실존은 불완전하다. 따라서 자아가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따라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로 인해 고독은 “홀로 존재하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 즉 자기몰입 속에 있는 비생산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만나는 자아 존재의 생산적 용기다.”1) 키에르케고르는 니체가 제시한 나약한 자아를 강화하는 방법으로서 고독의 힘이 자아의식을 상승시킬 수 있도록 정신을 깨어있게 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나약한 감정들을 스스로 깨닫고 바꿀 수 있도록, 고독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만드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의 고독은 자기몰입의 배타적 고독이 아니라, 시대와 문명이 만들어내고 있는 불안에 대처하며 자아의 능력을 회복하는 길이다.

고독을 그리워하며 고독의 시간을 표현했던 신호윤의 인물형상 역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고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신호윤은 자신만의 고독을 즐기는 방식을 자화상으로 선보였다. 예를 들어, <Island 001>(2014)(그림2)에서 우리는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인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관람객의 시선에 따라 종이의 레이어의 결합은 비움과 채움을 반복한다. 어느 각도에서는 비어 있는 공간들로 인해 나약하게 주눅 들어 있어 보일 때도 있고, 또 다른 각도에서는 강하고 채워진 선들로 인해 묵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종이의 본래적인 색이나 재질을 덮어버리는 이질적인 색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독특한 효과를 자아낸다. 대상 자체와 어울리지 않는 색의 표현은 더욱 대상을 고립시킨다. <Island 001>(2014)에서 파란색 역시 종이의 나약한 성질을 뒤덮으며 관람객의 가깝고 먼 정도에 따라 재료의 물성이 달라진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인물상은 전시장의 빛으로 인해 생긴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으며, 종이의 레이어의 방식과 염색된 색, 그리고 그림자로 인해 자아의 다채로운 성질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색을 위한 고독은 사회적 관계를 떠나 자신만의 고독 속에 완전히 잠기는 것과는 다르다. 자아와 내면적 세계로 향하기 위한 신호윤의 개인적 고독은 세계를 향해 밖으로 향한다. 자신의 욕망과 내면에 솔직해지는 것에서 개인의 자유가 발생한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고독을 선택하고 즐기기 때문이며, 사회의 통념이나 부당한 강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역시 고독한 성찰의 시간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림2 신호윤, <Island 001>, 2014, 종이, ©신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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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의 레이어로 이루어진 불완전한 형상의 존재에 대한 고민은 신호윤 작가가 오래전부터 작업했던 <본질은 없다> 연작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 연작에서 신호윤 작가는 다비드, 비너스 등과 같이 이상적으로 미화된 형상화, 피에타, 부처 등과 같은 종교적 성상, 정치적 영웅상 등을 작업해왔다. 완벽하게 영웅시 되고 이상화되어 왔던 조각상들은 신호윤에 의해 불완전하고 나약한 존재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사고는 앞서 언급했던 종이라는 재료에서도 나타나지만, 형상의 그림자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형상의 그림자, 그리고 레이어드 되어 갈라진 형상들의 불완전한 형태는 홀로그램처럼 완벽한 시점이 접목될 때 형상의 완전한 순간이 드러난다. 관람객의 각자의 위치에서 포착하는 대상의 형상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형상에 의해 드리워지는 그림자는 완전한 형상을 유추하게 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역시 진정한 형상의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빛의 세계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햇빛의 정도와 각도에 따라서 다채로운 느낌을 선사하는 데 있다. 단순히 색의 변화뿐만 아니라 형태조차도 변화를 준다. 그래서 신호윤은 종이의 물성과 레이어 결합을 통해 보여줬던 대상의 성질을 대상에 비쳐진 빛의 흐름을 통해서도 선보인다. 한낮의 빛이 물체의 윤곽과 색상, 질감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면, 어두운 전시장에서 신호윤의 빛은 간과했던 그림자의 형태를 드러낸다. 이로서 대상 사이로 강렬하게 파고드는 빛의 각도에 따라 조각의 성질과 비쳐진 그림자에 따라 대상의 성질이 변한다. 신호윤에게 그림자는 화가들이 불빛에 드러난 사물의 정확하고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장치 정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종이 조각과 대등하게 작품의 전면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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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신호윤, <Between 2 and 3-Pieta>, 2017, 100x300x280cm, 종이, ©신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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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상의 그림자는 그것대로의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신호윤이 이상화된 동·서양의 조각상과 형상의 그림자를 통해 허상과 실재의 문제에 주목해왔다면, 이번 전시에서 선보였던 <피에타>(그림3)에서 작가는 형상 자체를 더욱 분리시킨다. 여러 차례를 관람한 후 자신만의 위치를 발견할 때, 피에타의 상이 보인다. 그러나 곧, 하늘거리는 종이의 흔적으로 그 상은 다시 무너진다.

신호윤의 불완전한 형상을 통해 우리 대부분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과 간섭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제약이 따른다는 의미이다. 즉, 보편적인 이성의 기준에 의해 인정될 수 있는 제한된 틀 내에서 살아가는 삶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사회적 통념이 요구하는 대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신호윤은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자화상을 통해 스스로에게 해방감을 준다. 그림자와 빛을 통해 대상과 관람객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생기고 그 거리만큼 자유의 공간이 형성된다. 이 틈새를 통해 관람객은 잃어버린 자신을 되돌아본다. 실체의 삶보다는 허상을 위한 삶에 직면해 있는 인간 존재는 자신의 상황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자유로의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유로의 발걸음은 신호윤 작가가 언급했듯이 “허와 진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처럼 신호윤의 자화상과 인물 형상은 자아의 문제,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탐색하려는 의도를 담지하고 있다. 그는 형상의 허상과 실상을 조형된 공간에 함께 제시하며, 수많은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형상의 공감각적 구도를 이끌어냈다. 더불어 신호윤은 가벼운 존재로 보일 수 있는 종이를 통해 인간의 묵직한 존재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따라서 그의 형상들은 때로는 유약해보이기도 하고, 묵직한 존재로서 다가오기도 하며, 관람객의 착시된 시선으로 인해 어느 순간 관람객을 직시하기도 한다.

감춤과 드러냄, 현실과 허상의 경계를 드러내고 있는 신호윤의 방식을 통해 우리는 대상을 ‘새롭게’, 그리고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형상의 허울을 벗겨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아를 들여다보며, 하나의 질문,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환원된다. 자신의 상황을 똑바로 직시하고, 보이지 않았던 면을 발견하는 순간, 불완전하고 소외된 자아의 존재에서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아가 사회 속에서 허상의 삶에 종속되지 않고,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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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현(2018), 『소진시대의 철학』 , 책세상, pp.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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