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나는 오랫동안 작업실, 즉 창작공간에 대한 개인적인 문제 및 고민을 해왔던 예술가입니다. 또한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시 창작공간 추진단장으로써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해서 나는 창작공간이라는 것이 예술가에게는 어떤 의미이며, 행정에게는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양쪽을 다 경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발표하려는 내용은 ‘예술가’로서 바라보는 ‘창작공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공공기관’(서울문화재단 등)이 창작공간에 대한 고민과 정책을 실행할 때 어떠한 철학과 관점으로 진행하면 나를 포함한 서울의 예술가. 그리고 서울의 예술문화, 서울시민에 도움이 될수 있는 지를 제언해 보고자 합니다.
이 제언은 그러나 서울시 창작공간 10년의 흐름만을 짚어 보고 향후 전망을 제안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공공기관의 창작공간 지원사업과 평행선 혹은 동행선을 그리며 민간차원에서도 ‘창작공간지원사업’ (흔히 레지던시프로그램으로 부르는) 들도 진행되어 왔던 경험을 갖고 있 때문입니다.
이 글은 첫째로, 서울을 비롯한 한국에서 창작공간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게 된 시기의 흐름들, 약 1998년도부터 2008년까지를 짚어보고, 둘째로 서울시 창작공간의 10년의 활동들 즉 2009년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향후 10년간, 혹은 10년 이상 서울이라는 메가폴리스에서 서울시 창작공간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폐교부터 미술관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스까지
예술가에게 창작공간은 ‘최소한의 창작조건이다’라고 말합니다. 창작공간이란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의식성(인간성)을 가진 사람들이(예술가) 생활하고 창작하는 장소와 공간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폐교를 활용한 창작스튜디오가 조성된 것은, 기록상으로 보면 1995년부터입니다. ‘1995년에 4명의 작가들이 연간 400만원의 임대료를 내고 충북 청원군 마동리 회서분교를 활용한 ’청원마동창작마을‘입니다.
전국에 걸쳐 1982년도 부터 2004년 4월까지 2,993개의 폐교들이 발생한 가운데, 1998년 문화관광부는 <창작스튜디오 활성화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1999년에는 「폐교재산의 활용촉진을 위한 특별법」(1999.8.31.)이 제정되면서, 폐교활용창작스튜디오 정책은 가속화 됩니다.
동법에 따라 폐교재산은 매각, 대부, 자체 재활용했는데, 이중 미술창작스튜디오를 포함한 “문화예술 또는 문화산업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폐교는 미술인창작스튜디오 외에도 예술인수련원, 공연예술연습공간 및 공연장, 짚풀공예교실, 전시실, 고서박물관, 향토미술박물관 등 다양하게 변모했습니다. 폐교활용 정책은 ‘늘어만 가는 폐교재산의 건전한 활용을 촉진하고, 폐교재산 관리상의 문제점을 예방 또는 시정하기 위한 조치’4)입니다. 또한 ‘폐교를 활용한 문화예술공간을 통해, 주5일제근무제의 전면 실시와 여가시간의 증대로 일반 시민과 가족에게 문화체험과 향수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았습니다. 이는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에 대한 단순한 지원을 지양하고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을 통한 간접지원으로서 도심지역의 건물가격과 지가의 상승으로 인해 예술가들의 창작공간 확보의 어려움에 대처하고, 농어촌지역의 인구격감현상에 대한 대책으로서 폐교활용을 하는 방안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의 어려운 창작환경도 지원하고, 농어촌지역의 공동화된 폐교도 활용하는 정책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1997년 충남 논산과 인천, 강화 2곳을 시작으로 2004년까지 전국적으로 총 29개소의 폐교활용창작스튜디오가 정부차원에서 지원되었습니다.5)
정부는 다른 한편으로는 2002년과 2004년에 국립현대미술관 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를 열었습니다. 미술창작스튜디오 사업은 정부의 미술정책의 일환으로 직접적인 작가지원방식을 지양하고 미술 인프라 구축 및 프로그램 지원의 간접적인 지원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망 미술가7)들에게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유망 미술가는 공모를 통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미술가들에게는 창작레지던스 제공 외에 작가간 교류, 미술제도와의 연계, 지역문화센터, 국제문화교류를 지원했습니다.
정부가 국공립미술관의 미술창작스튜디오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91년 작가 박이소가 뉴욕의 <P.S.1> 국제 스튜디오 레지던시에 참가8)하면서 알려진 사례를 참고하면서 라고 합니다.
앞서 살펴본것처럼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정부가 주력한 창작공간 정책은 폐교활용과 미술관창작스튜디오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창작공간지원 정책이 장점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한계점 또한 있었습니다. 폐교를 활용한 미술창작스튜디오의 경우는 1999년 제정된 폐교재산활용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농어촌의 폐교를 재활용하자는 의도는 좋았으나 폐교에 자리한 예술가들이 만나게 되는 구체적인 현실은 달랐습니다. 폐교활용지원정책이 폐교를 무상으로 지원해 주는 것도 아니고, 일정정도의 임대료(물론 저렴하게)를 작가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여타의 다른 프로그램 등은 지원되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생활공간에서 떨어져 있어 접근성이 불편하였고, 폐교에서 생활 및 창작하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모든 문제들을 작가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여, 오히려 작가는 고립된 처지에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폐교에서의 창작 활동자체가 경제적 수입구조로 환류되지 못하였기에, 생활비 및 재료비 등이 필요한 예술가는 외부에서 조달한 경제성으로 폐교에서의 창작을 이어가야 했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생활권과의 접근성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예술가가 외부에서의 경제성 획득에서도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폐교에서의 미술교실 등의 수익적인 미술교육 사업들도 할 수 있었겠지만, 방문하는 사람이 없는 오지나 다름없었습니다.9)
논산 미술 창작실 입주 작가 A씨는 <너무도 안 매혹적인 미술계 이야기>에서 자신의 ‘폐교활용 창작 스튜디오’의 경험을 아래와 같이 적고 있습니다.
“또 다른 폐교가 되어버린 스산한 곳, 쓰레기들이 뒹굴고 잡풀들이 사람 키만큼 자라며 작가들이 떠나버리고 창고가 된 이곳에서 홀로 독수공방하는 서글픈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나면 될 것 아니냐. 심지어는 공기 좋은 곳에서 신선놀음 하는 냥 좋아서 버티고 있는 줄 아는 동료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실제로 처음 일년간은 정책이 좋았기에 기대와 꿈을 접지 않고 나름대로의 창작활동에 전념했습니다. 경제적 보조가 전혀 없는 여건 속에서 부천작업실의 전세금을 곶감 빼먹듯 생활비와 재료비, 교통비로 쓰다보니 2년도 못되어 바닥이 나더군요. 이후로 오도 가도 못하는 미아가 되어 오늘에까지 이르러 안 떠나는 것이 아니라 못 떠나고 있는 웃지 못할 긴박한 상황이 되어버린 꼴입니다.”
또한 국공립 미술관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원의 경우에도 본래 취지와는 다소 다르게 작동되었습니다. 즉, 유망한 미술가이지만 경제형편이 어려운 작가를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망한 미술가일수록 경제적 형편이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었고10), 공모를 통해 유망작가를 선정하는 시스템은 열악한 창작환경에 놓인 많은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였습니다. 미술관에서 제공되는 매우 소량의 창작공간은 미술가들의 창작환경 개선정책의 최선의 카드였는지는 지금도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습니다. 사실, 미술관레지던시지원은 ‘창작공간개선정책’보다는 ‘엘리트예술가지원’의 성격이 더 강한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또한 미술관 레지던스를 ‘일반 관객과 현대미술의 교감을 시도하는 지역문화센터로서의 기능’에 대한 기대는 취지는 좋았으나 입주작가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지역 커뮤니티와의 소통 기능을 하려면 입주작가선발 시 커뮤니티 아트 등 지역지향의 창작자들을 선정하여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작업에 몰두해야 하는 창작방법론을 가진 예술가들에게 의무사항처럼 ‘커뮤니티와 소통(창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창작을 지원’한다기 보다는 예술세계를 바꾸라는 주문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인창작지원과 커뮤니티창작은 이원적으로 동시에 선정되고 지원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2. 쌈지에서 대안공간까지
1990년대 후반부터 10년간 수많은 대안공간과 민간의 창작스튜디오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배경에는 첫째로, ‘1980년대 민중문화의 흐름 속에서 사회전반에 걸쳐 진행된 민주주의의 일반화된 흐름’, 둘째로, ‘1986년 민족미술협의회 부설기관으로 민중계열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던 공간인 서울 인사동 <그림마당 민>, 1991년 대구의 <예술마당 솔> 등의 경험’, 세째로 ‘민중미술도 제도화된 형식적 모더니즘 미술에도 반감을 가진 작가들의 새로운 미술에 대한 모색들,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논쟁’, 넷째로 ‘1995년 광주비엔날레 개최로 인한 한국판 비엔날레 글로벌 미술의 등장’, 다섯째로 ‘90년대 후반 홍대 앞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등장’11) 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1997년 IMF구제금융사태라는 경제위기로 인해 유학 중이던 많은 작가들이 귀국하여 그들이 해외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다양한 문화와 대안적인 제도들을 한국에 소개함으로써 대안공간운동은 가속화 되었고, 이와 동시에 민간차원의 대안적 창작스튜디오도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쌈지아트스튜디오(1998년)12), 경안창작스튜디오(2000년)와 일주아트하우스(2000년), 가나아뜰리에(2002년), studio_UNIT(2004년), 금호창작스튜디오(2005년), 장흥아틀리에(2006년) 등 다수의 민간 창작공간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들 민간창작공간들은 젊고 실험적인 작가, 혹은 신진유망작가들을 발굴하고 프로모션 하였으며, 젊은 큐레이터들을 키우는 인큐베이터 역할, 대안공간 국제 플랫폼의 기능, 미술비평 및 담론확장, 글로벌 미술의 흐름과 발맞추어 나가는 등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창작공간과 함께 밀접한 연계성을 가지면서 작가들을 발굴하고 프로모션했던 대안공간들은 1999년 2월 국내 최초로 대안공간을 표방하며 홍익대앞에서 출발한 <루프>를 위시해서 <풀>, <사루비아 다방>, 부산의 <대안공간 섬> 등이 등장했습니다. (자세한 공간 명칭은 위의 표 참조)14) 비단 서울 뿐 아니라, 인천, 안양, 수원, 대전, 대구, 부산 등 전국적인 단위로 확산되어 출현했던 대안공간은 순수 비영리를 추구하였고, 미술관처럼 소장품 확보 및 연구에 대한 의무규정이나 여타의 제한적인 통제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미술관과는 또 다른 성격의 독립적 공간15)이었습니다. 각 대안공간들의 목적은 다양했지만 한국 미술의 생산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과, 전시 및 작가지원 프로그램을 통한 예술창작 증진 활동을 한다는 것에서는 동일한 목적을 가졌습니다.16) 이 공간들은 2005년도에 (사)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를 구성해서 공동의 목적을 실현하고, 공간간의 연대, 교류활동에도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17)
대안공간들은 지극히 폐쇄적인 한국의 미술계에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작품을 내놓음으로써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미술비평과 담론을 형성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 중 개인 창작을 지원하는 것에 더해서 ‘지역문화 활성화를 통한 예술향수권 확대’를 추구한 공간들은 안양의 <스톤 앤 워터>, 인천의 <스페이스 빔>, 부산의 <오픈스페이스 배> 등입니다. 이들은 전통시장과의 연계, 재개발예정지역에서의 미술의 실천, 미술을 넘어선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지향 등 지역공동체와 소통하고자 하였습니다. 공간이 위치한 지역커뮤니티와 활발한 소통을 통한 예술활동은 2009년부터 본격화된 관주도(서울시)의 창작공간 사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이들 대안공간들은 많은 성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 어려움으로 오랫동안 운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문을 닫긴 했지만 대안공간의 운영자, 큐레이터들은 미술관 등 공공기관으로 대거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대안공간에서 공공기관의 전문인력을 수혈한 셈입니다.
3. 두 흐름이 겹치는 그 지점에서의 발화점
1999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의 창작공간운동은 정부와 민간 모두 새로운 모색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는 농어촌 공동화로 늘어만 가는 폐교를 활용하여 어려운 여건의 작가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자 했고, 소외지역의 주민을 위한 지역문화센터의 역할을 하고자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공립 미술관으로 하여금 미술창작스튜디오(레지던스)를 조성하여 유망한 작가들을 창작에 집중하게 하여 국내외 프로모션 하고자 했습니다. 민간의 경우에는 대안공간이라 명명되는 새로운 공간운동을 통해 예술창작과 교류, 한국예술계의 새로운 흐름를 만들고자 시도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창작스튜디오와 대안공간들의 활동이 확장을 거듭하면서 지역공동체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커뮤니티 아트,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도 커져갔습니다. 이는 글로벌 미술조류와도 연결되는 현상이었습니다.
이러한 민간의 대안공간운동과 공공의 정책적 실험이 이어지는 가운데 창작공간운동의 선상에서 주목할 만한 새로운 시도들이 일어났습니다.
첫번째는 2002년 제1회 일산 구산동 오픈스튜디오가 그것입니다. 지역에 모여있던 개인 작업실들이 오픈스튜디오를 벌인것입니다. 개인 작업실들은 그동안 마치 섬처럼 고립돼 있었으나 작가들은 자구책으로 작업실을 공동 오픈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술관의 정기 오픈스튜디오 행사와 달리 누가 프로모션해 주는 기관이나 큐레이터가 따로 없었으므로 스스로 자신들을 세상에 알리고 프로모션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러한 개인작업실들의 희망사항을 이어받게 된 것은 2006년 (사)미술인회의가 문예진흥기금으로 추진한 ‘전국 오픈스튜디오네트워크 프로젝트(OSN)’였습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개인작업실들을 연결하여 오픈스튜디오라는 행사를 통해 작업실을 사회와 연결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으로서 OSN추진위원회는 2006년 한 해 동안 전국 30여개의 시,도,군 지역의 426개 작업실에 대한 현장답사와 아틀리에 매핑, 작가설문조사를 진행했고 10개지역에서 지역순회 정책토론회, 지역별 오픈스튜디오페스티벌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전국에 흩어져있는 창작실의 현황파악 및 작업실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작업실담론을 활성화하고자 하였습니다. OSN답사팀은 전국 곳곳의 미술인들과 함께하는 동안 그들이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매우 높은 창작의욕을 가진 것을 보았고, 활발한 교류를 원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미술인회의는 OSN프로젝트를 통해 다음과 같은 정책제안을 했습니다.
첫째, 2004년 정부가 발표한 전국 2,000개의 창작스튜디오 조성계획18)에 개인창작실도 지원하자. 정부의 예산계획에는 공립창작스튜디오조성 예산이 2008년까지 총 100억원으로서 2,000개의 창작스튜디오 조성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설사 지자체의 대응투자가 이뤄줘 총 200억 규모가 된다하더라도 1실 당 조성비용이 고작 1,000만원 꼴이다. 그러므로 2,000개 창작실계획은 개인창작실 등록제도와 상호보완적으로 추진되면 좋을 것이다.
둘째, 작가들의 창작환경과 소통을 위한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지원 센터로서 아틀리에 지원센터(Atelier Support Center) 건립이 필요하다. 센터의 소프트웨어는 전시기회 확대, 정보플랫폼, 작가교류 활성화 창구, 작가 재교육 기회 제공, 작품 판로 개척이며, 하드웨어적 지원으로는 작업실 운영에 필요한 여러 경비를 지원하자. 셋째, 작가들의 작품을 공동으로 보관하는 창고, 새로운 형태의 지역문화센터의 역할이 가능한 미술작품보관소(Art Work Depository Site)를 건립하자. 여기에서는 작품의 공동보관, 상설 예술작품 판매, 새로운 형태의 지역문화센터, 시민문화교육장소, 지역문화 보존 및 관리를 할 수 있다. 대부분 작가들이 겪는 어려움 중 [미술작품보관소](가칭)의 필요성을 들 수 있다. 작가들은 매년 엄청난 양의 작품들을 생산한다. 작품은 그자체로 사회의 문화적 재부를 형성하며, 문화컨텐츠의 기능을 하는 등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수많은 작품들이 보관소홀로 파손되고 있거나 유실되고 있다. 심지어 매년 연말이 되면 1년 동안 피땀을 흘려 제작한 작품을 ‘소각’19)하는 작가도 있다하니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인 것이다. 넷째, 예술가들의 작품세계 확장과 작가역량 확대를 위한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공간으로서 시,군,구 공동작업장 운영이 필요하다. 공동작업장에서는 대규모 작품제작 장소, 공동작품 및 협업제작 장소, 새로운 매체실험장, 공동 공구임대 및 기술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다섯째, 예술가를 위한 법 제정과 제도개선은 절실한데 [문화예술진흥법]에 창작스튜디오 설치근거법 제정, 건축법의 건축물 용도규정에 창작스튜디오 분류 포함, 4대 국민보험 혜택부여, 공공건축물 신축 및 개축 시 창작문화공간 조성 의무화, 예술가 등록제 등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2006년 (사)미술인회의가 제안한 정책들 중 일부는 약간 변형된 형태로 현실화 된것(예술인복지재단 등) 도 있지만 여전히 유효하면서도 정책화 되지 못한 것들이 다수입니다.
세번째는 오아시스 프로젝트입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2004년 당시 건립이 중단된 예총의 예술인회관(서울 목동)을 본래 기능인 예술인창작지원공간으로 돌려놓고자 ‘스쾃(점거)’한 프로젝트입니다. 약 500여명의 예술가들이 ‘창작공간지원’을 받길 원한다는 서류를 작성했고,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2007년까지 창작공간의 담론을 증폭시켰습니다. 오아시스는 정책토론, 일인시위, 캠페인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창작실 담론을 확산하고자 했습니다. 오아시스프로젝트가 예총의 예술인회관을 스쾃할 때의 슬로건은 “시민에게 문화를 예술가에게 작업실을20)”이었습니다. 현재 예술인회관은 우여곡절 끝에 완공되어 예총이 일부 공간을 예술가들에게 창작실로 ‘임대’하고 있습니다.
네번째, 또 다른 형태로 주목할만한 현상은 자생적 창작촌의 등장입니다. 문래동입니다. 서울 서남쪽에 이치한 문래동의 준공업지역 철공단지의 빈 공간을 비집고 예술가들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2003년경이었지만, 본격적인 목적의식성을 가지고 스스로 창작촌(이하 문래예술공단)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 입니다. 작업실들의 자율적인 연합체인 문래예술공단은 우리나라 초기 10년 창작공간과 다음 10년 창작공간의 사이 시기에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07년부터 벽화프로젝트, 공공미술프로젝트, 오픈스튜디오, 거리공연 등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예술가들은 스스로 조직적으로 예술창작촌을 홍보하기 시작했습니다. 문래동일대는 90년대부터 정부와 시가 숙원사업으로 준공업지역 전면철거 고층타운을 재개발할 예정이었으나 창작촌이 도시정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일부지역은 예술창작촌으로 유지하기로 했고, 문래동 지역일대는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것입니다.21)
문래동은 현재진행형이지만 개인 예술가들의 공간들이 모이면 어떤 효과가 나오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한국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문래예술공단은 도시정책의 변화, 예술운동적 성과, 창작공간정책에의 영향 등 다양한 성과를 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섯번째 주목할 만한 사례는 2009년 부산에서 추진된 민관거버넌스 민간주도형 창작공간 또따또가입니다. 기획자 차재근은 ‘예술가의 창작공간을 넘어 복합적 커뮤니티 공간 조성을 통해 원도심의 문화창조 공간을 목적으로 했다. 창작공간을 매입조성형이 아닌 임대조성형으로 잡고, 서울이나 인천이 가진 단점, 즉 지속적인 유지관리비용 투입과 지원 대비 성과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하나는 지원사업 기간 이후에도 해당공간에 대한 입주예술가들의 운영능력 배양을 통해 독리적 자생기반 확보를 목표로 했다. 사업종료 후에도 예술가들이 공간을 그대로 유지해 건강한 예술 생태계로 남기기를 원했다. 또따또가는 창작공간을 통해 예술가가 지역과 시민들과의 소통과 공생을 도모하고, 특정장르가 아닌 다양한 장르를 수용하여 통섭의 효과를 유도했고, 임대료와 기초관리비외의 부담은 입주예술가들이 감당하도록 했다.’22)라고 밝혔습니다. 민간주도의 민관거버넌스를 통해 운영된 또따또가 사례는 공공의 창작공간지원의 또 다른 전범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이트 스페시픽한 레지던스 창작공간의 실험입니다. 현재의 한반도의 평화무드 정세가 도래하기 전의 실천으로서 경희대 미술대학 부설 현대미술연구소에서는 2011년 가을부터 경기 연천군 백학면 석장리미술관 내에 <인류평화를 위한 아름다운 공작소_DMZ국제 평화 레지던시>를 열어 2012년까지 운영했습니다23).국내외 작가들은 DMZ에서 거주하며 창작하여 현장에서 발표했고, 프랑스 공공조각가 장미셀 후비오(Jean Michel Rubio)는 ‘철책을 걷어올리는 손’ 이라는 대형 철조 조각 작품을 제작하여 연천 태풍전망대에 설치하기도 하였습니다. 같은 시기 철원에서는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가 추진되었습니다.24) 2012년 시작된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는 철원군의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의 안과 밖에서 전시를 개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2014년에는 철원 양지리 선전마을의 레지던시 공간을 개방적 플랫폼으로 확보하여 작가들이 DMZ현장에서 창작하고 발표하는 등 접경지역에서의 창작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산 구산동 오픈스튜디오, 전국 오픈스튜디오 페스티벌, 오아시스 프로젝트, 문래예술공단, 또따또가, DMZ레지던시의 사례는 한국의 대안공간운동과 함께 창작공간운동의 주목할만한 성과라고 생각됩니다.
4. 창작공간 20년의 시사점
현재 창작공간은 전국적으로 많으며 더 많이 생기고 있으며 대부분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공공주도의 창작공간들은 대부분 예술가들에게 창작공간 지원과 국내외 교류의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을 기본으로,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과 도시재생 및 상권활성화, 공동체 회복 등 다방면의 기능을 수행하는 복합문화예술공간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가운데 민간의 창작공간은 위축되거나 짧은 생애주기로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민간은 한편으론 창작공간에 카페, 복합문화공간 등 상업기능을 넣거나 기업마케팅적 요소를 강화함으로써 생존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창작공간들은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줍니다.
첫째, 창작공간정책 20년은 한국이 국제적 수준의 예술활동을 가능케할 근육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20년전에는 서구 모더니즘의 맹목적 추종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미술대전 위주의 작가등용문이 해체되었고,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전하는 무대가 됐습니다. 한국예술이 국제적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으며, 창작공간에서의 새로운 실험들, 학제간 연구의 시도, 커뮤니티 아트, 공공미술, 예술과 도시의 새로운 관계설정 등 예술 바깥의 여러 분야와 예술 만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지난 20년간 한국의 문화예술은 다양성을 추구하던 시기였습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시민사회영역의 확장을 가져왔고, 민주화와 새로운 사회적 변혁의 움직임들이 문화예술방면에서도 다양하게 실험되어졌습니다. 1990년말 이후 문화예술계는 인디밴드, 독립영화, 대안공간운동, 케이팝을 비롯한 많은 실험들이 있었고, 정부차원에서도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를 늘여갔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2009년부터 현재까지는 공공기관이 본격적으로 창작공간사업에 뛰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민간의 창작공간운동이 빠르게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 공공기관은 법과 제도, 행정, 많은 예산과 인력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창작공간을 추진했습니다. 실례로 서울, 인천, 경기 등 주요 광역지자체들이 창작공간을 추진하던 2008년 대표적인 민간의 레지던스스튜디오라 할 쌈지스페이스가 문을 닫았습니다. 당시 스스로 문 닫는 이유를 김홍희관장은 ‘관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때문’이라 말한 바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민간의 창작공간, 대안공간 출신의 기획자, 큐레이터들은 공공기관의 미술관, 창작공간의 전문인력으로 수혈되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넷째, 짧은 지원기간으로 인한 창작연속성, 지속성, 집중성이 저해되는 현상입니다. 현재 한국의 창작공간지원사업은 폐교활용공간을 제외하면 모두 단기적 지원이다라는 점입니다. 장기지원이 안되는 주된 이유는 ‘공공자금으로 운영되므로 일부 예술가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면 안된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다수의 예술가들의 창작환경이 열악한 상황과는 별개로 돌아가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다섯째, 공공기관 운영의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은 대부분 일정한 의무조항이 있다는 점입니다. 공간사용의 규정이 있으며, 정기 오픈스튜디오 참가, 때로는 주민대상 교육프로그램 혹은 지역에 대한 공공미술 참가 등이 적용됩니다. 기업지원 공간의 경우는 기업의 홍보마케팅과 연결됩니다.
여섯째, 창작공간운영 주체별 효율성의 차이 문제입니다. 창작공간의 효율성은 국공립 보다는 기업과 민간이 높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공공기관이 예산과 인력, 공간과 행정적 지원 등 모든 물량면에서 민간에 비해 뛰어나지만 투자대비 효율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그 이유는 소프트웨어 파워를 가진 전문가가 공공기관에는 드물다는 점입니다. 더 큰 이유는 관의 경직성에서 오는 효율성저하가 주된 원인일 것입니다. 관에 유능한 민간이 왔다가도 얼마 있지 않아 이탈해 버립니다.
마지막으로, 공공기관의 정책이 의외로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공공기관들은 다양한 종류의 창작공간을 조성, 운영하고 있으며 공간별 미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운영목적에 따라 예술창작지원의 목적, 도시재생의 목적, 공동체활성화의 목적, 상권활성화의 목적, 지자체 홍보의 수단 등 다양합니다. 지역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명 예술인을 유치하는 경우(고은, 이외수 등) 한창 홍보효과를 보다가도 말썽이 생기면 관의 입장이 돌변해 쫓아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창작공간의 흐름을 염두에 두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서울시 창작공간을 살펴보겠습니다.
5. 서울시 창작공간
1) 왜 생겼나? 언제?
‘서울시창작공간은 서울시의 컬처노믹스(culture+economics) 정책에 따라 유휴시설을 창작공간으로 활용하여 예술가와 시민의 창조적 능력을 증폭시킴으로써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사업이었습니다. 기능을 다한 유휴시설을 창작공간으로 재활용함으로써 예술가에게는 창작 공간과 창작 여건을 지원하고 시민에게는 질 높은 문화 향유 기회를 부여하면서 창작과 향유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서울시창작공간의 목적이자 역할입니다. 또한 구도심의 재생과 지역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나아가 서울의 문화·환경·교육·경제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했습니다.
서울시창작공간의 주요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국제교류, 신진작가발굴 등 레지던시의 장점인 예술가에 대한 효과적인 지원방식의 도입함으로써 예술가에 대한 지원을 최적화하고자 한다. 둘째, 예술창작의 성과물을 시민을 위한 문화예술로 환류함으로써 시민의 창의성 증진에 기여하는 일이다. 셋째, 유휴시설을 재활용한 창의의 거점으로 삼아 구도심과 낙후지역을 재생함으로써 도시의 균형발전에 기여하는 일이다. 넷째, 순수예술창작과 인접유관산업의 긴밀한 연계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재래시장이 활성화되고 인접산업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자 한다. 다섯째, 도시 내 다양한 특성을 반영하는 창작공간운영으로 지역에 정착함으로서 지역문화 활성화에 기여하는 일이다.> 이러한 과제들을 한줄로 요약해본다면 “예술가-시민-도시를 위한 창의의 거점으로서 서울시창작공간”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25)
창작공간 2.0을 표방한 서울시창작공간은 앞서 많은 창작공간의 경험을 참고하였습니다. ‘이제 작업실은 예술창작의 산실일 뿐 아니라 다자간 협력을 통한 사회적 생산과 발표의 장으로 기능함으로써 도시의 창조적 발전을 위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탄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에는 예술의 사회적역할 변화와 그 가운데 예술의 존재방식의 변화 등 예술계 내부의 변화요인도 있겠고 사회적 요청과 국제 도시 간 경쟁이라는 요인도 작용하였습니다.’26)
한편, 2009년은 서울 외의 주요지역에서도 공공주도의 창작공간들이 본격화된 해입니다. 광역 지방자치단체들 중심으로 창작공간을 육성하는 것인데,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규모자금이 동원되었습니다. 지자체 주도의 창작공간들은 그 명칭부터 ○○창작공간, △△아트플랫폼, □□창조발전소 등 이전의 레지던시 스튜디오와는 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운영목적에서도 예술계를 넘어 도시전체의 발전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2세대 창작공간은 매우 종합적 성격을 지니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 뭘 했나 ?
서울시창작공간은 2009~2010년에 걸쳐 총 8개의 공간을 오픈했고, 현재는 총 11개의 장르별 지원거점 예술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금천예술공장은 구 인쇄공장을 재활용, 예술가의 창의력과 서울디지털 산업단지의 기술력이 만나는 예술+산업 특화 국제 레지던시 스튜디오로, 신당창작아케이드는 전통시장 지하 빈점포를 재활용, 공예디자인 중심의 젊은 예술가 작업실 지원 및 지역활성화를 목표로, 연희문학창작촌은 구 시사편찬위원회 활용, 문인 집필실 지원 및 문학 활성화 사업, 문래예술공장은 구 철공소자리에 조성, 문래창작촌 지원을 비롯해 특성장르 지원센터 및 국내외 예술가 지원, 서울무용센터는 무용예술창작지원,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장애예술가 창작활동지원, 서울연극센터는 구 혜화동사무소 활용, 연극창작 지원거점, 서교예술실험센터는 구 서교동사무소 활용, 홍대 앞 예술생태계 활성화 도모, 서울예술치유허브는 구 성북구보건소 활용, 예술치유 공간,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는 구 은천동사무소 활용, 어린이 예술체험,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구 구의취수장 활용, 거리예술 및 서커스 장르 지원하고 있습니다.
3) 서울시창작공간의 고민_무슨 고민을 하고 있나 지금은 ?
그렇다면 현재 서울시창작공간의 구체적인 고민은 무엇일까. 제가 뭐 특별한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에 발제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몇가지 고민들을 추측해 보았습니다.
2008년 즉 10년전 컬처노믹스에 이은 혁신은?
먼저, 2008년 컬처노믹스에 이은 계승발전 혹은 혁신정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람부는 대로 뿌리뽑힌 나무처럼 흔들린다는 점입니다. 2008년의 컬처노믹스 유휴산업시설을 활용한 정책인 ‘예술적 창의기반 확보, 유휴시설이 문화예술의 창의발신지로 바뀝니다.’라는 대전제가 2014년을 경과하면서 바꼈는데, 창작공간에 서울문화재단의 고유업무인 장르별 예술창작지원 기능을 장착함으로써 아트팩토리 초기의 정책을 폐기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창작공간을 활용한 장르예술지원이 기존 정책을 대체할만큼 가치가 있는 정책인지는 의문입니다.
운영은 효율적인가?
둘째, 서울시창작공간은 재정적으로든 지원사업면에서든 효율적으로 운영된다고 볼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부산의 또따또가처럼 ‘창작공간을 임대조성형으로 잡고, 지원이 종료된 후에도 예술가들의 자생력이 오히려 성장하는 모델’같은 효율적인 모델을 만들지 못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서울시가 언제까지 운영비를 조달해줄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서울시창작공간 모델이 지속가능한 모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11개소의 창작공간의 시너지는?
셋째, 서울시창작공간 11개소의 유기적 연계와 특성을 활용한 융합창작의 결과물이나 시너지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문제점입니다. 서울시창작공간 10년이 지난 지금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의문입니다. 서울시창작공간은 영화, 음악 등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장르예술을 포괄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거리예술 및 서커스, 예술치유, 어린이창작, 장애인예술지원 등 실로 매우 종합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제각각이며 통합적인 전략도 잘 보이지 않으며, 연계, 융합창작이 많지 않습니다.
서울 예술가들의 기대는?
넷째, 서울의 예술가들이 서울시창작공간에 거는 기대가 과연 얼마나 높을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또한 국제예술계에서 서울시창작공간의 인지도 제고도 많이 부족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새삼 예술가들에게 제시하는 서울시창작공간에 비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시아문화의 전당(ACC)가 운영하는 아시아창작공간의 경우 아시아 예술가들의 플랫폼 기능을 확장해가고 있는데 서울시창작공간은 국제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미래 한반도를 위한 준비는?
다섯째, 현재 한반도에 감도는 평화통일 국면과 남북교류, 동북아 유라시아대륙으로의 비전을 펼치는 서울시창작공간의 계획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창작지원? 생활문화지원?
마지막으로는, 생활문화정책과 관계설정 필요합니다. 「지역문화진흥법」, 「서울특별시 생활문화 진흥에 관한 조례」 등 법과 제도가 제정되었고, 이에 맞춰 생활문화지원단이 대대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생활문화의 시대에 예술은 어떤 관계와 역할을 가져야 할 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사실, 이러한 질문과 고민들은 이미 많이 하고 계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례로 혁신을 위해서 2015년도(?)에 ‘서울시창작공간’이라는 ‘브랜드’를 버리고 ‘서울문화재단 예술공간’으로 통칭한 것도 ‘혁신’의 일환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과연 그것이 진정한 혁신이었는지는 별개로 하고요.
이제 10년 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서울시창작공간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 혁신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창작’이라는 즉 크리에이티브(Creative)라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감각과 상황을 지원하는 정책기관으로서는 그 변화를 따라가기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공공기관은 지원을 하는 곳으로서 창작의 현장 및 현상을 꾸준히 모니터링 하고 언제나 적절한 ‘지원’을 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원’을 해줄 터이니 ‘어떠한 의무’를 해라..라고 강요하는 것 말고요.
마지막으로 저는 미래의 창작공간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미래의 창작공간을 함께 고민해가는 과정에서 ‘창작공간 정책의 현장을 경험’한 저의 정책적 의견도 조금은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6. 미래를 창작하는 ‘미래창작공간≒서울시창작공간’
미래는 ‘현재’를 직조하면서 그려볼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창작공간은 ‘현재창작공간’의 다른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창작공간은 ‘하나의 작품’, ‘하나의 물질적/비물질적 작품’을 생산하는 공간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미래창작공간’은 ‘삶의 양상을 새로이 창안하는 실험과 창작’이 자유롭고 자율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는 ‘커뮤니티아트’를 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자신을 새로이 창작해 낼 수 있는 공간, 따라서 우리가 속한 사회, 공동체를 새로이 창작해 나갈 수 있는 실험이 일어나는 공간입니다.
1) 서울의 미래모습에 대한 _ 상상 + 상상
2017년 서울시가 발간한 ‘미래 전문가가 말하는 서울의 미래(2017)’27)에 따르면 미래서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구감소와 인구구조 고령화(1인가구, 빈부격차의 심화, 세대갈등, 다문화확산), 환경오염(지구온난화, 미세먼지, 물부족, 생물다양성 감소, 쓰레기 문제), 인더스트리 4.0 등 4차산업혁명, 스마트 도시, 젠트리피케이션), 극단적 재단(지진, 쓰나미, 홍수, 질병, 방사능) 등 이 모든 미래들은 인류에게 많은 우려와 고민을 주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세상을 바꿀만한(나쁘게든 좋게든) 가장 큰 기술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 유전자 편집(Genome Editing)기술이라고 합니다.
이 두가지 무서운 기술이 할 일을 상상해 봅니다.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사물인터넷을 움직여서 3D프린트를 통해 모든 물질을 창작해내고, 유전자편집 기술을 통해 신 인류를 창조함으로써 기존 인류를 도태(멸종)시킨다.”, “인공지능이 전설의 영웅들을 소재로한 영화를 만들고 나아가 영화속 인물들을 유전자편집 기술로 현실 존재로 창조해낸다. 영웅들은 영화속에서, 현실에서 싸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상상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이 창작한 물질들은 작품이자 동시에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는 물적토대가 되어 예술가를 밀어낼 수 있고, 창조된 작품으로서의 신 인류가 구인류를 도태시켜나가는 과정에서 예술가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직업들도 생기겠지요. 지하철광고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사 가운을 입은 디자이너(성형외과의사)’가 이제는 휴먼기획자, 휴먼디자이너로 나타납니다. 새로운 인류도 공룡도, 이순신장군도, 세상의 모든 물질도 사물인터넷 하에 포섭될 때 과연 예술가와 그의 창작공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상상 + 상상 + 그리고
*예술도시; 서울은 아마도 아시아에서 현대예술의 중심도시가 될 것입니다. 통일도 되었고, 통일 이후 서울은 여전히 중심이 될 것인데,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해양문명의 플랫폼으로서 서울은 예술로 꽃필것입니다.
*실천도시; 서울은 지구적 차원의 생태, 평화운동의 중심지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냉전해체, 분쟁의 해결, 지구적 재난에 대한 성찰적 대응, 생태문명, 평화공존, 공유지 공통계를 실천하는 예술도시가 될 것입니다.
*실험도시; 삶의 새로운 양상을 실험하고 대안적인 것들을 토론하고 함께 살며 시도하는 헤테로토피아적인 예술사이트들이 도시 곳곳에 싹트면서 다양한 공동체의 실험장이 될 것입니다.
*모험도시; 유행에 민감하고 IT기술과 소통정보에 빠른 한반도는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과 함께 4차산업혁명을 이끌 것입니다. 예술은 독창성, 모험과 도전을 먹고 살듯이 예술도시 서울은 과감하게 모험을 즐길 것입니다. 예술은 모든 가능한 것들을 스마트하게 연결하여 그 모든 기술을 이용할 것이며 협업을 시도할 것입니다.28) 하물며 창조자를 모아 육성하는 곳인 창작공간은 어떠해야 할까요?
2)미래를 창작하는 창작공간
2008년 컬처노믹스 서울시창작공간의 정책과 비전을 대신할 새 비전으로써 미래를 창작할 4가지비전을 제안합니다.
그것은 앞서 기술한대로 예술도시, 실천도시, 실험도시, 모험도시 입니다.
예술도시 : 아시아 중심 예술도시
실천도시 : 생태, 평화운동의 실천도시
실험도시 : 대안, 공동체 실험도시
모험도시 : 미래기술 모험도시
또한 서울시창작공간 운영의 전환을 제안합니다.
첫째, 안정적인 창작공간지원정책을 본격화해야 할 시점입니다. 현재 서울시창작공간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국공립미술관의 지원방식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따라서 서울의 대부분의 예술가들에게는 너무나 좁은문입니다. 특히 사회 첫발을 디디는 청년예술가들의 경우 예술가등용문으로서의 레지던스라는 기회를 잡을 확률은 하늘의 별따기 정도로 어렵습니다. 장기임대아파트 창작실, 전세공간 시프트, 시민자산화, 공공유휴시설의 공동작업실화 등 서울시는 할 수 있는 모든 조치, 모든역량을 동원하여 안정적인 창작실지원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창작공간에 서울의 미래가 달려 있으니까요. 정부도 2004년에 약속했던 2,000개 창작실조성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둘째, 서울시창작공간 운영에 외부기획자, 안무가, 연출가, 큐레이터, 비평가, 연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고 이들과 함께 공동운영해야 합니다. 문화행정 업무 외에는 모든 것이 창작, 창작의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셋째, 예술가들을 관리해왔던 모든 장치를 제거해주고 보다 자유롭게 창작에 임하게 해야 합니다. 예술가와 재단의 상호신뢰회복이 우선되어야 하며, 예술가의 활동에 대한 평가는 예술창작의 과정(레지던스 출근도장의 횟수가 아닌)과 작품의 결과물로 평가되어야 마땅합니다. 자율성은 예술창작의 가장 큰 덕목입니다. 예술가들에게 자유를 줍시다.
넷째, 입주예술가와 프로그램 참여 예술가는 그들의 창작을 위해서 서울문화재단의 모든 창작공간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공간 간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며, 공간별로 융합창작을 도울 전문가들이 배치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레지던스 공간운영방식을 전환해야 합니다. 기존에는 입주예술가에게 1년 혹은 3개월간 공간을 전적으로 개인 및 그룹에게 맡겨두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공간운영중심 보다는 프로젝트 기반 운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건 바이 건으로 아트프로젝트를 제안받고 새프로젝트가 생성되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 공간, 전문인력, 장비 등을 맞춤형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간의 스텝들과 참여전문가들은 프로젝트의 프로덕션에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해야 할 것입니다.
여섯째, 모든 레지던스에는 인문학과 과학수업이 필요합니다. 예술가들이 대학에서 배운 내용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그런면에서 예술가들이 레지던스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실천한다고 인식되어야 합니다. 창작과 발표에 걸쳐 학회 등 연구가 따라 붙어야 합니다.(백기영, 서울시립미술관 학예부장)
일곱째, 창작공간 매니저와 스텝은 문화행정가, 공간관리자가 아닌 외부의 모든 것들과 연결할 줄 아는 연결자, 콜라보 기획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온라인 플랫폼의 강화가 중요합니다. 온라인 포털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작공간 DB구축 및 지속적 업데이트와 정보 제공, 창작공간 네트워킹 사업 활성화 등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미래서울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데 서울시창작공간이 가장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입주예술가와 스텝들이 새로운 작품제작, 새로운 모험에 들떠 잠을 설치며 순간순간 전율하는 기쁨을 누리길 바랍니다. 사실 제가 2008년 컬처노믹스 서울시창작공간에 참여했을 때 꾸던 꿈이기도 합니다. 예술가 여러분, 공공기관 종사자 여러분 지금 안하면 언제 하겠습니까? 당장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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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원고는 필자가 2018년 11월 29일, 「제10회 서울시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창작공간 패러다임 시 프트」에서 발표했던 원고 ‘창작공간 10년+10년+10년 and...’임을 밝힙니다.[if !mso]> <style> v\:* {behavior:url(#default#VML);} o\:* {behavior:url(#default#VML);} w\:* {behavior:url(#default#VML);} .shape {behavior:url(#default#VML);} </style> <![endif] StartFra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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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16. 제8회 서울시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 ‘최소한의 창작조건, 예술가의 작업실’
3) 문화예술진흥법」 제2조 제1호 제2호 제3호 규정,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 제3조 규정에 의한 박물관 및 미술관
4) 2004. 5 폐교재산 활용 기본계획. 교육재정지원과. 폐교재산의 소유권을 확고히 하여 무단점유 등에 따른 재산권 침해를 예방 또는 시정하고, 미활용상태에 있는 폐교재산을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에 따라 적정하게 유지 및 관리를 목적
5) 창작스튜디오의 조성 목적은 ‘예술창작 공간 확충사업’의 일환으로 어려운 여건의 작가들에게 창작공간 제공, 레지던시 작가집단거주를 통한 작가간 교류, 비평과 미술 담론의 확장 등 미술제도와의 연계, 미술체험학습 등 관객과 현대미술의 교감을 시도하는 지역문화센터, 국제교류의 교두보 역할이었습니다. 2004. 미술창작스튜디오 운영활성화 방안. 양건열.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미술창작스튜디오의 기능별 분류 : 작업실로서의 창작스튜디오,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서의 창작스튜디오, 지역문화센터로서의 창작스튜디오, 국제문화교류시설로서의 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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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004. 미술창작스튜디오 운영활성화 방안. 양건열.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7) 창작환경(인프라) 지원을 목적으로 하면서 유망미술가를 선발하는 방식은 정책적 모순이라고 생각된다. 다시말하면 인프라지원은 다수 예술가를 위한 정책으로 제시해놓고, 막상 실행은 소수 유망작가를 선발하여 지원하는 레지던스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필자 주.
8) 창작 스튜디오 지원사업의 현황과 과제, 양현미, 2002
9) 전국 미술창작실 네트워크의 현황과 전망, 김윤환, 2006
10) “대부분 국립창작스튜디오 같은 경우는 이미 검증이 충분히 되어 있고 국제적으로 교환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는 능력, 돈이 되고 언어가 되고 여러 가지로 단기적으로 3개월이 되든 1년이 되든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준비된 사람들만 참가할 수 있는 그런 곳이고….”2006년 10월 14일, 전주 정책토론회에서, 전 고양스튜디오 입주작가 C씨
11) (한국의 대안공간실태연구, (사)문화사회연구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7)
12) 쌈지스페이스 창작스튜디오는 ㈜쌈지가 순수미술 작업을 모티브로 하는 디자인과 함께 순수예술을 지원함으로써 문화를 아는 기업이미지를 형성하고자 하는 '아트마케팅'사업의 일환으로 운영. 2007,신현진
13) 2005. 미술세계 9월호. 김성호. 대안공간 네트워크의 기대치와 한계 “2000년에 탄생해 전액 국고지원 사업으로 운영된 <인사미술공간>은 국가 예술지원정책의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 하다.”
14) 필자가 미처 다 알지 못한 많은 공간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리스트에 누락된 공간들이 있다면 전적으로 필자의 리서치부족에 기인합니다. 미안합니다. 필자에게 직접 알려주시면 다음 연구에 추가하겠습니다.
15) 2005. 미술세계 9월호. 김성호. 대안공간 네트워크의 기대치와 한계
16) (사) 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의 자료에 의하면 대안공간들의 목적을 대안공간 간의 연대를 통한 연구활동 및 정보교류, 전시 및 작가지원 프로그램을 통한 예술창작 증진 활동, 아카데미 및 워크샵, 출판 등의 학술사업, 지역문화활성화를 통한 예술향수권 확대, 대안공간 활동의 자료 및 지표화와 정책연구, 한국현대미술의 국제성 획득을 위한 국제교류 증진활동, 아트페어를 통한 새로운 미술 유통구조 확대를 위한 활동 등으로 기술하고 있다.
17) 대안공간의 미래에 대해서는 2010년 김노암씨는 시장가치와 자본과의 더 많은 예술철학적 경쟁과 현실적 협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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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004년 참여정부 ‘새로운 한국의 예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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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가 작업실을 가질 여유가 없어서 했던 방법 중 제 짐들을 주변 작가들의 작업실에 분산을 시키고 전시가 있을 경우 작업할 필요가 있을 때 빌려서 작업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문제가 있느냐면 일년 동안 작업을 쭉 하다보면 작품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요. 처음엔 조금씩 보관했었는데, 또 했던 경험 중 연말이 되면 집에서도 일년에 한번씩 소각을 하잖아요. 그래서 사진만 남겨두고 소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생활을 6년 가까이 했었습니다.” A작가. 2006년 9월 6일 광주 창작환경 정책토론회에서
20) 2004년 8월 16일 MBC 시사2580 등 매스컴 보도, 2005년 프랑스 Arte 트랙 9월 방영, 「점거 매뉴얼북」올벼출판사, 2007, 오아시스프로젝트
21)문래동에 위치한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는 2007부터 2013년까지 ‘지속가능한 문래동을 위하여’라는 연속토론회 개최, ‘도시재생의 대안적 미래 – 문래예술공단’이라는 연구보고서도 발행하고, 서울시에 정책제안 등, 문래예술공단을 조화롭게 유지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을 인문학자, 정책가, 예술가, 문화활동가들과 함께했다.
22) 창조도시를 넘어서_문화개발주의에서 창조적 공동체로, 국토연구원 창조적 도시재생 시리즈, 나남, 박세훈 외 지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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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경희대현대미술연구소가 필자를 예술감독으로 초빙하여 기획 및 진행의 총괄을 진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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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기획 김선정, http://www.realdmz.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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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세대 창작공간의 현황과 전망-서울시창작공간을 중심으로2010. 김윤환
26) 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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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017 미래 전문가가 말하는 서울의 미래(인구구조의 변화, 환경오염, 산업재편,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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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김창경.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의 강연 <재수 없으면 200살까지 산다ㅣ생명공학인생 | 세바시 830회>강연중 발췌. “스마트한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구글, 구글은 20년 만에 초일류기업이 됐는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삼성은 관리를 잘하기로 유명한 회사다. 그렇다면 최근에는 어떤가 구글의 성공비결은 관리가 아닌 창조자들을 모아 무한대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가능했다. 혁신적인 기술이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창조자들이 위대한 제품을 만듭니다. 관리가 아닌 구글의 엄청난 혁신적인 제품생산은 스마트한 사람들(Smart Creatives)이 위대한 제품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기업의 할 일이라고 보는데서 출발합니다. 창조자를 모아 놓는것에 그치지 않고 무한대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 현재 구글, 인스타그램 등.... 초일류 기업들이 경영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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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윤환 : 미술가, 창작공간연구자, (협)예술과 도시사회연구소장, 프랑스 등 유럽의 대안적 삶과 예술의 실험공간들을 경험했고, 2004년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통해 공간담론에 참여하게 됐다, 그 후 문래창작촌만들기, 서울시창작공간단장, DMZ프로젝트, 행정아트, 문화적 재생 등 사회적인 예술을 하게되면서 민과 관을 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