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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믿음

대한민국이 2000년대의 중반에 돌입했을 즈음, 나도 곧 어찌어찌 초등학교 고학년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 스스로는 잘 체감하지 못했지만 되돌아보면 그 때는 IMF라는 강력한 경제적 상흔의 여파 등으로 대가족이라는 전통적 가족 형태와 한 부모 가정이라는 새로운 가족 형태가 기묘하게 공존하던 시기였다. 그렇게 시대의 모호함을 지나 여기 고학년까지 도달한 초등학생들은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순박했으나, 또 그만큼의 때 묻지 않은 짐승과도 같이, 정보화 시대에 발맞추어 유행처럼 집집마다 들여놓게 된 컴퓨터나 드물게는 스마트폰을 통해 어른들에 의해 가리어진 성性의 기척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가던 나 또한 그들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적당한 예를 하나 들어서 이야기해보자. 어머니와 단 둘이 동네를 나선 어느 날, 나는 자주 가던 동네 약국에 들러 콘돔이 잔뜩 담겨있는 가판대를 발견한다. (사실 발견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전부터 그것이 그 곳에 있는 줄 알고 있었으나 굳이 말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왜인지 그날따라 더 반짝거리는 콘돔박스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것이 무어냐고 어머니께 물어 보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것은 나의 어머니에게 가해진 순수함을 가장한 짓궂음이었을 수도. 그렇지만 지금도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나는 그것의 용도를 어렴풋이 짐작할 뿐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어머니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딸에게 그런 질문을 받게 된 것이 꽤 불쾌하셨는지 ‘뭘 다 알면서 물어보냐’며 나에게 면박을 주는 것이었다.

그 뒤로 성적인 영역은 나에게 호기심의 대상임과 동시에 금단의 영역이 되었다. 입 밖으로 내뱉을 경우 누군가를 창피하게 하거나, 그 스스로가 창피해질 수도 있는 것. 그러나 그것은 비단 내 어머니의 영향 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드리워진 터부의 그림자가, ‘성性’이라고 하는 영역에 유독 짙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역을 향한 대중들의 호기심, 그리고 수치심에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감정들의 양태는 마치 출근길이나 등굣길의 이른 아침, 스산한 안개 너머로 굳게 닫힌 맥양집1)의 문을 힐긋 훔쳐보는 행위와 닮아있다. 그렇게 그 문의 건너에 앉아있었을 사람들과 가게를 드나들었을 이들에 대해 상상하며 그 문짝의 뒤편을 은밀히 가늠해보는 것과 닮아있다.

이렇게 국민들의 대다수가 향유하고 있는 ‘성性’에 대한 담론은 이제껏 굳이 증언되지 않았고, 여전히 터부시되며 때로는 제한되고 있다. 그렇다면 포괄적인 성의 영역뿐 아니라 구체적 성매매의 영역으로 눈을 돌려 이야기 나눠본다면 어떨까? 그것은 아마도 입 밖으로 내기에 더 어려운 주제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미묘한 인식과는 모순되게도, 우리 모두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운 주변에서 ‘성을 사고파는 행위’가 그 모습과 성질을 바꾸어 지속적으로 존재해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작가 정유승은 이번 2018 광주비엔날레 :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에서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을 관객들에 선보였다. 작업을 진행하기 전, 광주성매매피해상담소 ‘언니네’를 통해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성매매 여성들과의 만남을 이어온 작가는 전시 이후에도 그녀들 스스로의 목소리를 되찾아주고자 하는 방식적 연구를 그치지 않고 있다.

비엔날레 출품작 <시선의 반납>은 이와 같은 연구의 결과를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다. 성매매 여성들의 개인적 경험과 자기진술이 담긴 책자를 손으로 한 장 한 장 넘겨 읽다보면 관객들은 그동안 타자의 목소리를 빌어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에 얼마나 익숙해왔는지를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그 흔한 잇는 말이나 미사어구 하나 없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여성들의 진술은 관객들에 담백하다 못해 깨끗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오랜 시간 주체의 자리에서 배제되어온 여성들의 복권復權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 굳이 말 하지 않음으로 오히려 더욱 강력히 진술되고 있는 것이다.

앞선 경험들을 바탕으로 작가의 작품들이 어떻게 흘러왔는가를 살펴보다 보면 영상작품 <오늘의 믿음(2018)>이 정유승 작가를 통해 이 사회에 등장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이 처음으로 대중 앞에 발표되던 날, 관람객들을 온전히 작품에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 흔한 배경음악조차 삽입하지 않았다는 흑백의 영상물을 보며 나는 우리 사회의 무엇이 이 작가를 작품하게 만들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 <오늘의 믿음>은 성매매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구전 신앙과 기리2)와 같은 무속행위들에 대해 작가가 직접 인터뷰 하고, 이를 재현하는 모습을 담아낸 영상작품이다. 이에 대해 본격적으로 서술하기에 앞서, 나는 우리나라 성매매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에 대한 개략적 분석을 통해 작가의 작품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대한민국 성매매의 역사를 분석하는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하지만, 타 국가들과 비교해볼 때 더욱 두드러지는 국내 성매매의 특징인 ‘모순적 면모’는 시행 법령들과 정책에 실제 현장을 비추어 볼 때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5년 광복 이후 일본정부가 대한민국 영토에서 철수하고 난 뒤, 새로 수립된 이승만 정부는 국내에 남아있던 공창제도를 과거 일본 식민지의 잔재로 보고 1948년『공창제도 등 폐지령』을 시행해 근절하려 했다. 그 후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성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해왔지만 그와 동시에 성매매 여성의 등록과 검진을 실시하고 있다.3)

이렇게 성매매를 법적으로는 금지 및 관리하면서, 동시에 묵인하는 행태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을 문란하고 타락한 여성으로 치부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제도의 관리 하에 두고자 한 것이다. ‘처벌받는 윤락녀’의 개념은 1961년, 박정희 정부가『윤락행위방지법』을 제정한 뒤 최근 2002년까지 사용되어왔다. 이와 같은 법률에는 성을 판매하는 여성들이 처벌을 받는 대상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1년 뒤인 1962년부터 전국에 ‘특정지역’을 설치 및 운영하는 등 사실상 공창제를 인정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였다.

이와 같은 군사독재 정권에 반하여 일어난 6월 항쟁 이후 민주화를 향한 열망과 함께 여성인권에 대한 요구가 정책적으로 제기되면서 여성운동은 참여정치 경향을 가속화하게 되었다.4) 앞선 흐름 속에서 2000년과 2002년에 이은 전북 군산 성매매 업소 화재 참사5)는 성매매 여성에 관련한 법안을 개정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사건 이후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개정되었고, 그제야 ‘창녀’이자 ‘윤락녀’로 치부되었던 여성들이 ‘성매매 여성’이라는 이름을 통해 성을 소비하는 행위 또한 문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성을 판매하는 행위에 집중하고 성 판매 여성을 타락한 여성으로 상정한 단어인 ‘윤락녀’에서, 판매뿐 아니라 성을 구매하는 행위 모두 처벌해야할 것을 내재하고 있는 ‘성매매 여성’에 이르기까지 법령 내에서 성을 판매하는 여성을 이르는 단어는 사회의 흐름에 발맞추어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은 성을 판매하는 여성들이 아주 오랜 시간 부정한 존재로 천대 받음과 동시에 범죄자로 상정 되면서 까지도 여전히 이 사회의 한 부분으로 남아왔다는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굳이 증언되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소비되고 있는 여성들. 그렇게 작가는, 사회 내에서 묵인되며 기형적으로 존속해온 대한민국의 성매매 현장을 작품을 통해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 그녀들의 존재가 없지 않음을, 오히려 그에 가해진 모순들로 인해 우리 모두가 혼란 속에 있음을 포착하고 있었다.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미신들을 기록한 뒤, 작가 스스로 재현한 것을 도큐먼트 형식으로 제작해 관객들에 제시한다. 언제부터 전승되어왔을지 모를 기리 등의 무속 행위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남성을 돌멩이로, 여성은 삶아지거나 날것인 계란으로 상징되어 재구성되었다. 영상 속에서 계란은 각각의 상황에 맞게 바닥에 부딪혀 깨지거나, 삶아져 쪼개지거나, 검은 잉크에 물들어 젖어가고 있었다.

작품의 제목인 ‘오늘의 믿음’은 얼핏 보기에 긍정적 분위기를 띄고 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와 같은 관용구를 떠오르게 하는 이 제목은 사람들에게 자연히 오늘 하루의 믿음, 오늘의 기원 등 희망찬 의미를 담은 말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상을 올리기보다 주로 진상손님과 화를 쫓고, 좋은 기운을 불러들여 무탈을 기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무속행위 기리는 바위 앞에 선 계란과도 같이 무법의 자리에 맨 몸으로 선 직업여성들이 실제 그녀들의 생존과 안전을 국가도, 고용주도 보장해주지 않는 자리에 홀로 서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렇게 영상이 끝나고 난 뒤, 작품의 제목은 돌연 그 의미를 달리한다. 여성들은 가게의 한편에서 직접 쑥을 태우고 팥을 쑤며 손님과의 불화가 없기를, 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며 그 날 한 가닥의 믿음과 기원을 무속 행위에 담아 풀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직접 성매매 현장을 답사하며 찍어온 업소 내부의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일반적인 노래방이나 소주방 등의 카운터처럼 보이는 업소의 입구 아래 구석에는 자그마한 종이가 하나 붙어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시청에서 부착하라고 주고 간 공익 포스터였다. 그곳에는 ‘성매매는 성 매매자와 성 매수자 모두 처벌받는 불법 행위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말썽을 부리는 손님들이 볼까 싶어 일부러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이 포스터를 붙여놓곤 하더라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쓰게 웃었다.

 

1) 맥양집 : 일반음식점으로 허가를 내고 맥주와 양주를 판매하는 성매매업소를 칭하는 말

2) ‘기리’의 사전적 정의는 존재하지 않지만, 칼 기리, 쑥 기리 등 무속행위에 사용되는 도구와 함께 접목되어 주로 그 날의 액운을 좇아내고 좋은 기운을 불러들이는 제사의식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는 단어다. 이는 지역마다도 행해지는 기리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3)박정미, 『한국 성매매정책에 관한 연구 : ‘묵인-관리 체제’의 변동과 성판매여성의 역사적 구성, 1945~2005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1, p.10

4) 위의 논문, p.298

5) <!--p.각주 {mso-style-name:각주;line-height:160%;layout-grid-mode:char;margin-left:0.0pt;margin-right:0.0pt;margin-top:0.0pt;margin-bottom:0.0pt;text-align:justify;font-family:나눔고딕;mso-hansi-font-family:나눔고딕;font-size:10.0pt;color:#000000;} -->전북 군산시에 소재한 성매매 업소에 두 차례의 화재가 발생하여 성매매 여성 19명과 남자업주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구출되었던 참사. 화재 전부터 성매매 여성들의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 창문에는 쇠창살을 달아놓고, 출입구는 두꺼운 철제문으로 잠가두고 생활했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탈출하지 못하고 질식사로 사망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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