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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고 사소한 기념비


이세현 , 경계-some point#8, 33.5cm x 30.5cm, Pigment Print, 2017

이세현의 사진 콜라주(collage)는 기억의 저장고이다. 하나의 장소를 수차례 찾아가 사진을 촬영하고 출력한 후, 500~1000장 정도의 사진을 차곡차곡 붙여 가는 과정에서 장소의 기억과 작가의 행위는 중첩되고 교차하고 쌓여간다. 지난겨울에서 봄까지의 시간이 축적된 유일무이한 단 하나의 이 사진들은 공터에 올라오는 봄의 풀들처럼, 낱낱의 사진은 자신의 기억의 뿌리를 대지(臺紙)에 내리고 있고, 그것은 오직 ‘흔적’으로만 희미하게 존재한다. 말 없는 외관에 감추어져 있는 이 사진의 내적 생명은, 그것이 한 장소를 한 컷에 담은 스트레이트 사진(straight photography)처럼 보이지만, 대지(臺紙)와 함께 존속하는 풍경의 기억과 작가의 유희에 의해 창조된 '은밀하고 사소한 기념비'라는데 있다. 그런데 이 기념비(사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인간의 기억의 한시성 때문에 ‘지속’되는 요컨대, 기념비로서의 기능을 제거하며 스스로를 제시하는 역설을 낳는다.

이세현, boundary-tree, inkjet printer ,66cm X 100cm, 2015

이세현은 전작인 <Boundary>시리즈에서, 돌을 내던짐으로써 찰나와 영원의 경계를 보여준 바 있다. 돌은 전통적인 기념비의 재료로 대개 시간이 흘러도 손상되지 않는 것이다. 돌이 존속하는 한, 기억 또한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영속성을 보장받는다. 돌은 지속성에 대한 헛된 인식을 화석화시킨다. <Boundary>시리즈에서 작가는 돌을 던지는 행위를 통해 모든 영속성에 대한 환영을 부정하고 오히려 돌의 찰나, 혹은 시간의 경계를 가시화했다면, 신작, <Somepoint>에서는 모든 순간들의 접점을 콜라주한다. 도시의 흔한 공터와 가까운 교외의 풍경을 촬영하고 오려내어 풀칠하여 붙이는 일련의 과정은 그때그때의 선택과 조합(조립)에 따라 의미의 영역도 변주된다. 어떤 작품은 계속 진행 중이기도 해서 완결이 아닌 과정 속에서 작품의 ‘어떤 지점(some-point)’만 드러낸다. 또는 풍경의 맥락에서 탈구되고 데페이즈망(Depaysement)에 의해 변형된 풍경들이 우연적이고 낯선 조합을 이루기도 한다. 마치 왜곡되거나 삭제되고, 편집되거나 과장되는 기억의 처소처럼 말이다.

우리의 기억은 불안정하여 쉬이 변형된다. 보이지 않는 기억은 유령처럼 현실을 지배하기도 하고 망각의 강물로 휩쓸려가기에 기억의 장소를 찾기란 언제나 난제이다. 기억과 망각은 동형체로 서로를 원하고 서로의 빈자리를 메워 준다. 망각은 기억을 전제하고, 기억 또한 망각이 없이는 그 자리가 묘연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역으로 기억의 부재를 낳기도 한다. 이세현은 기억-기술(記述)의 방법으로 콜라주를 선택했는데, 이는 우발적이고 기형적인 기억의 형태를 표상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작가는 세계의 흔적(인덱스)을 데스마스크로 떠내어 균일한 평면으로 옮겨와 마치 팔림프세스트(Palimpsestus) 같은 기억의 자장을 형성한다. 그 옛날 양피지에 지우고 쓰기를 반복했던 것처럼, 사진기록에 잠재되어 있거나 숨어 있는 기억들이 흔적으로 기술(記述)되어 있기에, 그것을 해독하려면 ‘적극적으로 다르게 깊이 새롭게’ 보지 않으면 안 된다. 풀이 자라나기 전의 공터가 가진 기억, 풀뿌리와 이파리의 생몰년도, 바람의 방향과 햇살과 햇볕의 양, 해 질 녘의 석양의 스침과 구름과 비의 두께 등 풀에 스민 기억들도 썼다가 지워지는 양피지처럼 비가시적이기 때문이다.

그간 이미지의 자유로운 생산과 소비, 분배의 생태계 속에서 해석과 비평, 사유와 새로운 실천을 개진해온 이세현의 신작에 다시 주목하게 되는 것도 이 은밀하고 사소한 사진행위 때문이다. 대개 사진은 프레임 안에서 제한적인 의미만 생산/소비되어왔다. 특히 디지털 이미지 저장 장치가 보편화된 오늘날에는 사진이 인간의 기억 능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알리바이가 돼 버렸고, 이 지독한 딜레마는 사진 이미지의 범람과 이미지의 맹목을 낳았다. 이 도시의 한켠에서 이세현의 소소하고 반복적인 사진행위들은 단순히 사진이 과거의 사실들을 흡수하고 재생하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상호 주체적이고 대화적인 행위임을 보여준다. 이는 기억이나 기억의 형성에 대하여 지배이데올로기와 거대한 시스템이 제시하는 근거에 흠집을 내는 역기념비(Counter-monument)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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