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된 반복으로 긴급함을 상실하였다. 이 몸짓은, 어쩔 수 없어,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흐느적거릴 수밖에 없는 몸짓이다. 이 몸짓은, 일상적으로 배인 습관화된,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을 받지는 않는 몸짓이다. 이 소리는, 매우 오래된 리듬이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떠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때 그 곳의 노래를 반복하는 것은, 지속되는 '상실' 때문이다. '상실'은 이제는 지긋지긋한 반복이다. 나는 떠난다. 다시. 아마 내가 돌아갈 곳은, 두 번째(어쩌면 세 번째, 네 번째) 거주지인지도 모른다. 이주는 지속되고, 자칫 방심하면 난민이 되어버린다.
오늘날의 ‘이주’는 보다 적극적인 차원에서 이뤄진다. 그것은‘이산’과는 달리 스스로 선택하고 준비한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그러나 이주라는 것이 삶의 터전을 옮겨가(야하)고 새롭게 적응해야한다는 측면보다는 오히려 과감하게 무엇인가를 버려야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버리는 것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에서 삶을 불안하게 하는 듯하다. 누구도 예외 없이 내몰리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주해갈 곳이 있긴 있다라는)이라도 남아있다는 것은 다행이라기보다는, 어쩌면‘최소한’의 경계선들이 자꾸 그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이 마지노선이 무너져가면서 ‘난민’이 된다. 지속되는 (자발적, 비자발적) 이주의 삶에 대해서 '긴급하지 않다' 라고 할 수가 없다. 선택할 수 있다고 하여도, 고작 선택할 수 있는 것은‘계약기간’ 일 뿐이다. 이미 떠남의 양상은 보편이 되었고, 수만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조건을 갖추기도 전에, 떠나버렸고, 먹을 것을 구해야하며, 렌트를 내야하고, 할당된 시간동안 임무를 완수해야한다. 계약기간은 이미 지나가고 있다. 긴급함이 다시 획득되는 게 아니라, 언제나 그랬음을 매번 깨달을 뿐이다.1
인디비주얼과 디비주얼2
개인을 정체로, 배제적으로 호명하기. 인디비주얼을 장려하기. 디비주얼적으로 조우하기. 가치로서의 생명이나 가능성이 금융화되는 과정에서 예외일수는 없다.
거기엔 뭔가 촘촘한 망이라도 있는 듯, 고르게 걸러진다. 외국인과 단기거주인과 장기거주인과 시민은 구분된다. 그에 따라 그의 의무와 역할과 권한이 설정된다. 제도는 말끔한 처리를 원하지만 찌꺼기들이 쌓인다.
구체화되는 다문화 정책들은 그 어떠한 차이라 할지라도 존중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존중된 차이로 '구별지어서' ‘화합’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문화주의'는 현대국가들이 집중적으로 정책을 쏟아 부운 사안이기도 하고,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것은 오늘날의 생명정치의 가장 전형적인 표본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합의’에 의한 법적으로 정당한 세금을 내는 적정 시민화의 과정이 이뤄진다.
만일, ‘그때’, 뭔가가 도래할 수 있었다고 했을 때, 우리가 ‘타자’에 대해서, ‘타자’로서 좀 성숙했었더라면 어땠을까. 가령‘디아스포라적’ 뼈아픈 정서들을 토대로 하여, 그 ‘타자’를 ‘환대’하지 못함, 그 불가능성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겪었었고, 깊게 성찰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삶’이, 소위 말하는 문화적 감수성이 보다 농밀해졌을까.
그러나 현실에서, 이민을 장려하는 정부의 계산에는 글로벌 단기 체류들이 만들어내는 경제와 금융으로부터 명확하게 이익이 발생해야함이 포함되어 있다. 관광 장려와 더불어 수많은 종류의 비자들이 다양화되었고, 그마다 제한된 체류기간이 설정되며, 그리고 그 체류기간별 체류비, 렌트비, 세금 등으로 이뤄지는 경제는 이제는 당연한 한 국가의 주요 예산안이 되었다.
화음
화음이란 그것을 숙련하여 이루려 하면 불가능하지만, 그냥 놔두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유주루) 그녀는 어려서부터 '소리'와 '박자'와 '울림'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에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일종의 '균형'과 '화음'에 대해 편안해 한다. 그것은 그녀를 지탱하는 것이다. 갈등이나 불협화음, 스트러글에서 생겨나는 폭력들은 아프고, 힘든 것이다. 그 갈등을 인정하면, 낯선 상태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렇다고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이질적인 존재, 또한 인종, 언어, 성별 등 명시적 타자로서 무조건 적응을 해야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갈등’이란 몹시도 두려운 것이다.
비록 이상적일지언정, 비현실적일지언정, 나이브할지언정, '균형' 혹은 '평화' 혹은 '화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한때의 '즐거움'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최소한, 렌트를 내기 위해 직장을 다니면서도 뭔가를 커뮤니티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아마도 스스로처럼 적응이 어렵고, 갈등이 두려운 타자들을 위해서 연주를 해보는 것이었을 것이다.
리웬 Lee Wen
이번 유주루가 퍼포먼스에서 차용한 노란색 젠타이는 나에게 리웬을 떠올리게 하였다. 나는 가끔 리웬을 찾아갔다. 리웬은 한 때 살갗에 직접 노란색 페인트를 칠하고 퍼포먼스를 하였다3. 그는 싱가포르의 퍼포먼스 아티스트이다. 그의 '엘로우'는 상징적인 색깔이다. 나는 한 번은 그에게, '개인적으로, 당신에게, 노란 색이란 무엇입니까' 라고 물어보았다. 그는 우선은 '엘로우 맨의 여행'의 에피소드와 그것의 여정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다소 그 이야기들이 심심하게 들렸다.
내가 듣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아주 개인적인 어떤 특별한 내용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만난 리웬은 작가이기 이전에 내 아들과 조카에게 기타를 가르쳐주고, 잔소리도 하는 싱가폴 아저씨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리웬에게 다소 개인적 이야기를 하기에 이르렀나보다. 가령, '유치원 때 나는 노란색 하드를 먹다가 그것이 너무 빨리 녹아버려서, 내 손에 줄줄 흘러버리는 것을 후루룩 핥아먹었었다' 등의 싱가폴에서 살아온 어린시절, 옛날 이야기를 해주리라 기대했었나보다. 그러나 그런 대답은 너무 평범해서인지, 제법 돌아오기 힘든 대답이었다.
리웬, 그는 시를 쓰며 주로 드로잉을 한다. 최근에는 무슬림으로 개종하였다는 페이스북 글을 보았다. 그는 한편으로는 싱가포르의 젊은 작가들에게 멘토링도 해주고 있다. 그가 왜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는지에 대해서, 작년까지만 해도, (작년에 작고하신) 그의 연로하신 어머니 때문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그가 싱가포르를 떠나 가족에게 가지 않는 이유는 사실 '싱가포르'때문인 것 같다.
그의 몸은 질병으로 인하여 그를 자꾸 버리고 있고, 점점 더 힘들게 하고 있다. 그의 몸, 그것은 어쩌면 그에게 그의 나라와도 같은게 아닐까. 땅이 있고, 사람이 있고, 공동체가 있고, 정치가 있는 국가란 장치 거기서의 스트러글, 자신의 몸과의 스트러글, 삶의 터전과의 스트러글, 중충적 스트러글을 리웬은 하고 있다.4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의 스트러글은 자국민이 자국을 등지지 못하게 하는, 결코 뗄레야 뗄 수 없고, 극복하려해도 되지 않는 토대 같은 것 위에서 벌어진다. 그런데 그 토지와 토대란 것은 점령된 것이었다. 시민은 땅에서 자란 식물이 아니어서인지, 아무리 ‘토착’하려 해도 불가능한 이 이산의 느낌은 지속된다. 그의 바디_국가, 토대, 몸은 분리될 수 없는 스트러글 자체로 현현된다. 스트러글은 재생산과 증식의 토대가 된다. 그곳에 리웬이 있단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돌아갈 곳을 마련해준다. 그의 몸은, 그의 스트러글은 다음 세대들에게 딛고 자랄 대지가 되어간다.
유주루 마에다
그녀의 5시간 듀레이션 퍼포먼스5를 보면서, 혼잣말, 끝도 없이 하는 혼잣말이 떠올랐다. 누가 보건 말건 신경도 안 쓰는 줄 알겠으나, 사실은 '시끄러우면 안 되는' 그런 혼잣말, 혼잣 소리, 혼잣 노래. 혼잣 리듬이다. 이는 무한 반복될 수 있다. 그녀는 아마도 허락이 된다면, 죽을 때까지 반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주루는 항상 잘 웃는 친구다. 아니, 사실 유주루를 처음 만난 것은, 몇 년전, 그녀의 퇴근 후 시간, 싱가포르에서였다. 그녀는 싱가포르에서 라살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뒤, 퍼포먼스를 해왔지만 일본인(외국인)이기 때문이었는지, 풀타임 직장이 있었고, 시간을 내어서 퍼포먼스 아트 활동을 해왔다. 그러던 중, 한국 광주의 뽕뽕 브릿지에서 레지던시 기회가 던져졌고, 여전히 (번역) 일감을 갖고 광주에 왔다. 낮에는 일을 하고, 쉬는 시간에 작업을 하는 것은 여전한 채로 말이다. 광주에서의 몇 달이 지나, 유주루는 싱가폴 생활을 접고, 인도로 직장을 옮겨갔다.
유투브에서 젠타이 프로젝트를 찾아보면, 수많은 젠타이 복장의 사람들이 재밌게 놀고 있는 것을 볼 수있다. 아마도 권태로운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직장인으로써는, 이주민으로써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그러한 여유말이다. 이질적인 것과 자유로운 것은 어떤 면에서는 상통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오히려 증상적인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갈등을 최소화하고 화음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글로벌 중산층 적정시민들의 이데올로기적 덕목이 아니던가. 그 적정 시민이 되지 못하면, 어떤 룰을 어기는게 된다. 쉽지 않은 결정들이 부유한다.
외국인으로써, 잘 정돈된 외국에 살려고 버둥거리는 것이나, 엉망진창인 본국에서 허우적 거리는 것이나 비슷한 지금, '개인'이란 것은 마치 저기 멀리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만 같다. 개인의 어떤 싱귤러함을 추수리기, 즉 추억하기, 연원을 찾기, 상실한 것 속에서 반복적으로 (특징적으로 어린시절) 그 어떤 과거를 특정하여 회상해보기, 그리고 그 노스텔지어 속에서 잠시 머물기를 하는 것도 아마, 한 30년전 쯤에 다 끝난 놀이처럼 여겨진다. 그럼에도 정서들은 난민처럼 순환한다.
디비주얼의 초상
주름들, 줄줄이 딸린 새끼들과 손주들, 10달러 안팎의 호주머니 사정, 휘어버린 새끼 발가락, 썩어가는 발톱, 당뇨로 부은 다리, 썩은 치아, 불친절한 주름으로 변한 인상, 듣기 싫은 말소리, 갖가지 슬리퍼, 허풍떠는 택시 운전사, 과잉 친절 버스 기사, 핫 팬츠들, 교정기들, 모기 물린 목덜미, 닿지 않으려고 곧게 서 있기, 알아들을 수 없는 잉글리시, 차별짓는 잉글리시, 고급 잉글리시, 아이들에 대한 과잉 친절, 이민 장려 광고들, 땀, 느린 걸음, 졸음, 거대 바퀴벌레들, 흰 와이셔츠에 블랙과 네이비 양복바지, 대다수 비슷한 금융가의 대다수 비슷한 샌드위치와 호커센터, 미지근한 맥주, 그리고 그럼에도 항상 환하게 웃던 몇몇 로컬에 익숙해진 친구들.
그녀는 결국 약속된 5시간을 꽉 채웠고, 관객은 졸다가, 먹다가, 떠들다가, 오가다가, 그 시간을 겨우 참아내는 지경이었다. 중간 중간 몇몇 리듬과 박자들과 노래는 좋았고, 몇몇은 별로였고, 어떤 부분은 지루했다. 예민하다가 자연스럽다가 어색하다가 일상적이었다.
1. 나는 이 글을 구상하면서, 묵혀뒀던 생각꺼리들을 꺼내 보았다. 어쩌면 오늘날의 ‘예술’행위가 어쩔 수 없이 디아스포라적(이산의) 산물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유주루의 작업은, 분명 강요된‘이산’의 삶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부러 돌아가지 않으려는 어떤 의지의 표명처럼 보이기까지 하다. 그녀의 자발적 이주의 삶에서는, 보다 명랑하게 환대를 요청하는 경우(젠타이 프로젝트)와, 그것의 실패들로부터 오는 개인적 감정들을 승화시켜내는 일상적 시도들(개인 퍼포먼스)이 서로 대응하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정서와 매체라고 하였을 때, 그것이 탈식민주의와 함께 고찰이 되었다면, 아마도 트린 T 민하(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3480) 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매체의 언어들, 그리고 탈식민 정체성이라는 새롭게 획득되어야만 했던 것들에 대해서말이다.‘상실’ 그리고 불가능한‘환대’의 고통과 폭력은 아마도 탈식민 역사의 트라우마자체일 것이다.
얼마전 북서울미술관에서 제인 진 카이젠의 작업을 볼 수 있었다. 2016년 아트 스펙트럼에서 소개되었을 때 보지 못했던 작업이어서 아쉬었었다
제인 진 카이젠은, 자신과 같이 어려서 입양된 경우를 “젊은 이산”이라고 부른다. 이번 북서울 미술관에서 상영한 비디오 <여자, 고아, 호랑이>(2010/2014) 작업에서는 한국 사회의 풍경, 근대사의 잔혹한 흔적들을 배경으로 하여, 외국인 여자와 그녀가 돌보는 아이들(고아)이 쫓겨남과 갈곳 없음 사이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내게‘디아스포라’의 정서란, 일종의 이도저도 아닌, 즉 돌아갈 곳이 이제는 없는데, 배제와 차별 속에서 성장한, 겨우 살아난 후에 태어난 곳이라고 알려진 그 장소, 그 나라를 찾아 가서 막상 마주하게 되는, 폭력적일 정도로 낯섦이 발생시키는 기가막히는 비탄이다. 부정하고 싶고, 부인하고 싶은 이질감, 그러나 어디 하나라도 그리워할 곳을 필요로 하는 그런 절박하고 깨질듯한 유약함의 정서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에 지속적으로 회귀, 즉 트라우마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와 다른 경험 속에서도 비슷한 정서들이 현재에도‘유포’되고 ‘전염’되며, 반복되고 있음이 간헐적으로 눈에 띈다. 자신의 삶과 경험으로부터 나온 정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업들조차 매개되어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여전히 지금도 폭력적 상실이 자행되고 있어서인지, 되돌아갈 곳 없음으로부터 배태된 어이없는 비탄의 정서는, 때로 되돌아갈 곳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기 위해선 어디론가는 가야 하는 상황을 타며 계속 순환하고 있다. 순환: 폭력적 상실과 회귀하는 트라우마적 반복 속에서, 개인이란 존재는 끝없이‘비자발적 상실’을 하는 자이다. 그는 상실 이후, 또한 제대로 ‘등록’되지 못한 채로, 지속된‘배제’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을 ‘삶’이라 일컫게 된다. 거기서 억지로 배태된 절박한 정서들을 껴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적 트라우마의 반복이 된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적 이주와 난민의 발생은, 차라리 너무 노골적인 이주와 이민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작업들도, 일종의 ‘매개’와 ‘전이 양상’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 반-강요된 선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밝혀내는 이러한 노골적 명랑함은 현대의 이주와 이주 노동이 소비되는 방식에 달라붙어 순환한다. 유주루의 작업을, 차라리 노골적 명랑함을 가장함으로써 타자의 내부에 침잠해 들어가기를 거부하며, 개인의 특정정서만을 반복 루핑하는 퍼포먼스라고 해본다.
2. individual, dividual
3. 리웬의 “Journey of a yellow man"은 1992년 런던에서 시작된 일련의 퍼포먼스 시리즈이다. 황인종의 피부에 노란색을 덧칠한 것인데, 실제로 리웬 자신도 중국계 인종으로써의 싱가포리안의 정체성으로 상징화 되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촉발되었다. 실제 피부의 색(물론 인도를 포함해 동남아시아의 황인종의 피부색은 모두 제각각이다)과 사회적 정치적 국가적 차원에서 상징화되는 정체성은 동일하지 않은데, 이것을 동일하게 간주하려는 ‘노란색’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다문화주의의 이슈는 다른 배경의 인종, 피부색, 언어, 종교가 화합을 이뤄야한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와 같이 애매한 차원이 있다. 즉 동일성 내에서도 존재하는 ‘타자성’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축되어 가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 다수의 중국계가 정치, 경제, 계급적으로 우위를 점한 싱가포르에서 중국계 싱가포리안이 겪는‘문화’적 감수성과 상호성내에서의 차이가 상징적으로 잘 표현된 퍼포먼스이며, 나아가 이는 리웬이나 아티스틱한 활동에서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에서의 다문화주의 이슈들에게까지 확장된다.
4. 여기서 나는 그의 홈페이지와, 2012년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에서 나온 리웬 도록을 통해서 주요 비평가와 큐레이터들이 쓴 리웬에 관한 비평글을 넘겨보고 있는데, 이 중에서 신발을 등에 얹고 땅바닥에 붙어서 기어간 퍼포먼스(Untitled,'Acionesen Ruta', Mexico city, Mexico, 2003)를 언급하면서 시작한 쥰 얍의 글이 눈에 띈다. 쥰 얍 또한 리웬의 엘로우 맨 시리즈의 변천과, 그의 파킨슨 발병 후의 변화에 주목한다. June Yap ("I feel the Earth Move...", Lee Wen Lucid Dreams in The Reverie of the Real, Singapore Art Museum, 2012, pp46-54). 여기서 나는 내가 처음 리웬을 만났을 때 이미 파킨슨 병이 그의 조건인 상태였던, 그 몸을 스트러글하고 있는 아티스트를 상기하고 있다.나는 리웬을 통해서 단순히 정체성이란 것이, 타자화라는 것이 이미 규정된 다문화 배경(인종, 피부색, 종교, 언어, 성별 등 천편일률적인 구분과 카테고리들)에 의해서만 발생하는게 아니라는 점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 뿐만 아니라 한국처럼 사회 자체가 빠르게 변화하는 발전위주의 사회, 그것도 급변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언제나 새롭게 정체성을 획득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환경은 개인이 ‘생명’을 일궈가기에 그 자체로 폭력적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리웬의 삶과 퍼포먼스는, 그의 몸과 예술이 얽혀 벌이는 스트러글이다. 그리고 이는 한 개인의 몸이, 자기 자신의 몸이, 타자들이‘돌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과 삶을 바라봄에, 나는 이러한 토대라는 것이 개인이 뭔가를‘획득하고, 성취할 수 있는’배경으로서가 아니라, 생명이 무르익고 변질되며, 회귀하고, 재생산되는 터전임을 증언하는 퍼포먼스임을 느끼게 된다.
5. 2017년 여름 광주 뽕뽕 브릿지에서의 단기 레지던시 후에, 유주루 마에다와 카이람은 9월 말에 전시 <POW!>를 개최하였고, 이때 오프닝 퍼포먼스로 유주루 마에다는 5시간 듀레이션 퍼포먼스 <Those Who are The Last>를 실행하였다. 여기서 유주루는 노란색 젠타이를 입고, 여러 노란색 젠타이 복장들과 함께 엉켜있는 채로, 망치로 못을 박는 소리들과 금속 소리들, 몇몇 악기소리와 함께 스스로 일본 노래를 불렀다. 이는 그간 수년간 해온 젠타이프로젝트들의 녹화 비디오들을 5시간으로 편집하여, 그 시간과 영상을 배경으로 하였다. 여기서 유주루가 부른 노래는 오래된 일본 노래로, 하나는 <Furusato>“고향”이라는 제목의 노래이고, 다른 하나는 <Yashinomi>로 한 여행객이 멀고 먼 어느 나라에서 발견한 ‘코코넛’을 보면서 고향을 생각한다는 내용이다. 노래의 가사는 아래 유투브 동영상을 참조할 수 있다. 유주루의 퍼포먼스도 유투브에 공유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