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억의 마중물이다. 보이지 않거나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는 방법에서 시각은 다른 감각기관에 비해 해상도가 높아 기억을 기술(記述)하기에 적합한 매체이다. 사진을 찍는 것은 대상을 각인(刻印)시키는 일이다. 분명히 실재하는 것에 닿은 빛이 반사되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어와 필름 혹은 메모리카드에 기록되는 것이 사진 촬영의 물리적인 과정이다. 분명히 실재했으나 지금은 부재하는, 혹은 시간의 풍화작용으로 점점 사라질 위기에 처한 대상이 사진으로 각인되어 보존되는 것. 롤랑바르트는 부재로써 존재하는 사진 앞에서 시간의 푼크툼을 경험했다. 유한할 수밖에 없는 존재를 꼭 붙들어 매기 위한 욕망은 사랑하는 사람을 간직하고자 그의 그림자를 그린 ‘디부타데’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존재가 부재해야 현존성이 높아지는 사진의 예를 오르페우스 신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오르페우스는 지상의 빛을 보기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어겨 저승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아내를 지켜 봐야했다. 여기에서 ‘지상의 빛’은 바로 사진 촬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데스는 아마도 사진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에우리디케를 오르페우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유한한 존재를 무한하게 반복 재생해서 볼 수 있게 한다. 그것은 실재의 각인이자 종이유령이다. 인춘교의 지난 10년간의 사진작업은 기억 속에서 자꾸 밀려나는(사라지는) 것들이 주제와 소재가 되었다. 유령화 되어 가는 외딴 섬과 그 존재가 희미해지는 폐교, 곧 무너질 것 같은 마을이 등장하는가하면 이어 어머니와 할머니의 자리에 넘실대는 빛도 찾아낸다. 그런데 <소록도> 연작 이후 작가의 사진이 변했다. 사진 자체가 ‘섬’처럼 보이는 <소록도> 시리즈에서는 의미를 강화하기 위한 힘 있는 시선이었다면, 이후 폐교와 엄마, 도시를 촬영한 <지난날 처음 마주친 그때처럼>, <엄마>, <다시, 봄>에서는 작가의 시선이 사진 속 곳곳에 이슬처럼 스며있다. 마치 그리운 사람과 함께 했던 장소를 다시 찾은 이의 ‘젖은 눈’에 비친 풍경처럼. <지난날 처음 마주친 그때처럼>, <엄마>, <다시, 봄>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시선은 배회하는 자의 시선이다. 해 질 녘 동네를 천천히 산보하는 이에게 곳곳의 잔해와 무너지는 담벼락, 작아지는 엄마의 육체는 선명하게 다가온다. 마음에 균열이 생기거나 그리움이 깊어질 때 얻을 수 있는 걸음이고 눈빛이다.
중요하고 화려한 의미로 팽배한 사진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이 젊은 사진가는 자기가 사는 도시와 엄마, 언젠가 한 때 머물렀을 폐교에 다가가 희미한 사진 언어들을 건져 올린다. 시대의 주변 혹은 바깥에 머물렀던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나는 이 점이 인춘교의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의미 없음과 존재 없음의 실재를 각인시키는 것이다. 다만 젖은 눈으로 사라지는 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오르페우스의 시선. 그런 의미에서 ‘젖은 눈의 시선’은 중요해진다. 끝내 놓지 않으려는,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시선으로 인춘교는 소멸하는 것에 닿은 빛을 발견한다. 이것은 어쩌면 작가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신작, <다시, 봄>에서 인춘교는 그가 머무는 도시가 낡고 허름해짐과 동시에 급변하는 것을 보며 유토피아를 찾지 않고 이 곳이 바로 ‘헤테로토피아’임을 깨닫는다. 불가능한 이상향으로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뭔가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헤테로토피아는 ‘생성태’라 할만하다. 이 도시에 잠들어 있었던 꿈을 깨우고, 기억을 불러오고, 새 숨을 불어넣는 것은 인춘교에게 중요한 일이다. 왜냐면 그의 유년이 살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물을 찾듯, 조붓한 골목길과 허물어지는 담벼락, 쓰임을 다한 사물들과 쓰레기를 찍은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진 용어 중에 잠상(latent image)이라는 말이 있다. 아직 인화하기 전에 필름에 머물러 있는 상(像)을 의미한다. 잠상은 현상(現像)을 해야만 그 상(像)이 드러난다. 진정한 사진가는 보이지 않고,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불러오거나 현상하는 자이다. 이 도시와 폐교와 엄마와 할머니가 한 때 꿈꾸었던 꿈을 현상하는 일은 인춘교에게 끝낼 수 없는 과제이다. 기억-기술(記述)로서의 사진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은 사진의 기록적 · 미학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봄_009_송정리_2017_Digital Pigment Print Ⓒ 인춘교
다시,봄_029_양림동_2012_Digital Pigment Print Ⓒ 인춘교
다시,봄_021_양림동_2009_Digital Pigment Print Ⓒ 인춘교
다시,봄_016_계림동_2017_Digital Pigment Print Ⓒ 인춘교
다시,봄_001_학동_2008_Digital Pigment Print Ⓒ 인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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