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롯데갤러리 창작지원전 2부 <윤준영 – 환상방황> 리뷰
예술 영역에서 쉽게 남발되는 소통, 치유, 공감 등의 상호성을 담보로 하는 표현들이 더러는 불편하게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 향수자들로 하여금 예술 그 본연의 힘으로 일종의 교감을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감성적 교류를 위해서 예술이 어떻게 모범적으로 작동해야 하는지 이미 답을 정해놓은, 다소 소모적이고 피상적인 일련의 상황들이 거북스럽다. 이러한 상황은 굳이 예술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표면상으로는 여전히 개성과 독창성이 미덕인 시대이고, 개인주의의 긍정적 역할을 제고하는 때이기도 하지만 모든 요소가 전면화되는 디지털 시대에서 개개인의 다름이 온전히 인식되고 수용되고 있는 가에 관해선 회의적이다. 하나의 망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에서 나와 타자의 거리는 아주 가깝게 좁혀지는 듯하지만 같은 가치와 같은 성과, 같은 규범을 추구하는 사회에서의 디지털적인 소통이란, 획일화된 가치를 확인하는 공허의 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여느 때보다 소통과 공감의 방법론은 다양해졌으나 실상 이 또한 사회적 질서를 위한 이미 정해놓은 답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광주비엔날레가 한창이던 지난 10월, 3주간 진행된 윤준영의 네 번째 개인전은 그러한 배경 속에 놓인 현대인의 상실과 좌절, 공허의 심리를 이야기하기 위한 자리였다. 작가는 표류하고 있는 자아와 작업의 현재까지 반영한 듯 전시의 주제를 <환상방황>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로 규정했다.
환상방황(環狀彷徨 Ringwanderung)은 방향 감각을 잃고 동일한 지점을 맴도는 현상을 일컫는다. 주로 기복이 심하지 않은 지형에서 짙은 안개나 눈보라, 폭우, 피로에 의해 사고력이 둔화돼 같은 지점을 원을 그리며 맴도는 상태를 지칭한다.
처음 그 작업세계의 출발점이 사회 안에서 체감되는 소외와 불안, 갈등, 단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난 전시에서는 사회적 갈등 요소가 보다 개인화 또는 체화되어 드러났다. 공동체의 물리적 형태임을 역설하던 집합공간들이 실은 두터운 벽과 벽으로 고립된, 의미 그대로 단절된 공간들의 응축이었던 것에 반해, 근작에서 주로 보이는 미로와 같은 구조물은 사회라는 전체적 질서에서 무력화된 개인의 현재를 암시한다. 작가는 작업초기의 응축된 공간들을 드문드문 창이 나 있는 큐브 형태로 분절시켜 주제를 부연하기도 했지만, 이내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무수하게 꺾인 벽들로 인해 출구를 찾기가 어려워 보이는 구조물 안에는 희망과 기원을 상징하는 푸른 달이 떠 있다. 먹과 콩테로 구성된 무채색의 화폭에 간간이 등장하는 푸른색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환기 역할을 한다. 또 다른 환기장치로 등장하는 새와 나무, 의자 등은 삶에 대한 희망, 고독, 상실의 현재를 대변한다.
끝 모를 우주와 같은 어둠 속에 부유하듯 떠 있는 섬, 검은 물결로 굽이치는 적막한 바다, 근원 혹은 회귀에 대한 갈망을 반영한 미로 속의 집, 생의 에너지가 연소되고 있는 희망이 사라진 방, 집으로 가는 길이 막막해 보이는 높은 산 아래의 너른 들판까지, 이렇듯 윤준영 작업세계에서 두드러지는 공간의 특수성 혹은 묘미는 공간 자체가 지니는 서사적 힘에 기인한다. 잠 못 드는 밤의 몽롱한 꿈을 꾸는 것 같다는 어느 관람객의 감상평도 작가만의 ‘구성된 공간’이 전달하는 에너지에서 비롯된 결과일 테다. 애초 사회와 삶에 대한 기록으로서 등장했던 화폭 속의 공간은 구체적 서사성에서 시적 함축성으로 그 성질이 변화되어 왔는데, 작가는 설명적 요소를 걷어냄으로써 사유의 폭을 확대시키려 한다. 더불어, 사회에서 개인으로 이동한 관심영역의 변화는 화법만 다를 뿐 여전히 그 서사적 흐름의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용의 일치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적 지속성에 비해 화폭 안에서 구현되는 조형성과 공간감의 한계는 아쉬운 부분으로 다가왔다.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구축한 큐브형, 혹은 미로형의 공간구성이 그 이상의 내용적 깊이를 부여하지 못하고 정형화된 표현방식으로 고착되는 가운데, 여백 또한 그저 빈 공간으로 남아 버리는 평면성은 작가가 풀어야 할 난제이기도 하다. 효과적 주제 전달을 위해 화면 안에서 상징적인 공간을 모색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흐트러짐과 모험을 지양하는 작가의 성향 상 내용과 형식면에서 어떻게 주제를 확장시켜나갈지는 개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이다.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사회의 큰 벽 앞에서 독립된 하나의 개체로 인정받지 못한 개인의 위기는 사회 전반의 불안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소통, 정보의 바다, 자유, 세계적이라는 미사여구로 치장된 지금을 면밀히 바라보면 그것은 과잉소통이며 지식과 인식이 거세된 범람하는 정보일 뿐임을, 자유의 미명 아래 나와 타자는 사회와 조직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 생산적 객체일 뿐임을 새삼 거론하게 된다.
소통을 화두로 서로 간에 좁혀진 거리는 낯섦을 배제한 채 외려 각자의 자아를 상실하게 하고 끊임없는 소외와 공허를 파생시킨다. 갈 길을 못 찾고 같은 지점을 맴도는 심리적 ‘환상방황’은 나의 부재에서 연유하는 것이며, 작가는 그러한 허허로운 상황을 작업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고객으로 불리는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이 윤준영의 무채색 위주의 어둡고 몽환적인 화폭에 조금이나마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모두가 생의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이라는 도구로써 강요되는 공감이 아닌, 나와 타자의 삶이 예술 안에서 공유되고 종국에는 서로를 위한 성찰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 * 필자 제공 2018 롯데갤러리 창작지원전 2부 <윤준영 – 환상방황> 전시장 풍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