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역사, 《노란 나비떼와 푸른 진실의 세월》 展
- 2017년 7월 7일
- 11분 분량
1.
나는 2016년 《예술, 역사를 해석하다. 예술적 실천, 역사를 만들다.》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광주 지역의 5월의 전시를 주목했다. 이 글에서 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재현된 역사의 간극 속에서 솟아나는 비판적 성찰을 통해 인간의 시선이 도래할 미래의 역사 또한 구성할 수 있음을 언급했다. 시대정신을 냉철히 파악하며 구성해 나가는 인간의 역사는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 시대마다 가지고 있는 다양한 철학적 사유가 현재는 물론 그 다음 세대의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제기하기 위한 첨병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야말로 미래의 열려진 지평과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이는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언급했던 것처럼, “현재의 진단학(le diagnostique du présent)”, 즉 오늘(지금 이 순간의 현재)을 사유함으로써 곧 다가올 미래를 위한 것이다.
왜 광주는 따스한 오월이 되면 유독 역사의 사건들과 흔적들을 ‘드러내며’ 처참했던 그 때의 시간들을 끄집어내는 것일까? 5월의 시간 속에 상기되고 있는 광주의 5·18과 지난 몇 년 동안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는 세월호 사건은 ‘지나간’ 시간의 역사가 아니라, 아직 풀어나가야 할 ‘현재의’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오월의 광주는 다른 도시와 달리 특별히 이 시기에 집중하면서 지나간 역사의 흔적들, 즉 현재 및 인간의 흔적들을 기록하고 해석하면서 새롭게 열린 문화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마치 19세기 구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를 필두로 하여 동시대의 예술가들에게 나타났던 ‘리얼리즘’ 선언이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후의 예술가들에게 프랑스 특유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도록 많은 영향력을 끼쳤던 것처럼 말이다.1)
쿠르베가 강조했던 그 시대의 예술가들에게 적합한 주제는 그 시대의 모습일 뿐이라는 사실(l’esprit du temps)과 현재의 화가가 과거나 미래의 모습을 재현할 수 없다고 한 설명(anti-mimétisme, anti-idéalisation)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를 ‘지각한다’는 것과 ‘재현’하는 방식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역사에 대한 이해를 ‘상상’이나 ‘감각화’에 의존하며 언급했던 미술사학자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 1872~1945)는 “역사 연구와 예술적 창작의 공통점은 이미지를 형성하는 방식”, 즉 “모자이크식 접근법”이라 언급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술가-기록자들을 ‘단순한 눈’으로 여기거나 그들의 시각이 모종의 기대나 편견 없이 대상을 ‘순수하게’ 바라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스케치 역시, 아니 다큐멘터리 사진이나 축자적 의미의 경우에도 ‘관점’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이는 니체가 언급했듯이, 우리가 추구해야만 하는 진리란 없다. 오로지 진리에 대한 ‘관점’, 즉 진리에 대한 ‘해석’만 존재한다.
인식, 진리, 학문, 자연, 객관성 같은 개념 자체는 과정의 산물이라는 니체의 계보학적 작업을 주목한다면, 예술이 역사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 역시 제기될 수 있다. 이는 재현의 정치학과 관련될 수 있지만, 종종 예술가에게 자신의 역사에 대한 가치평가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윤리학 또한 동반된다. 역사를 표현하는 예술가는 그 표현이 과거의 죽은 자에 대한 ‘부당한 행위’인지 그렇지 않은지 끊임없는 질문과 망설임에 시달릴 것이다. ‘가치 있는 것’을 선별하는 역사가처럼, 예술가 역시 ‘표현 된 것’의 배후에 선택되어 누락되어 ‘표현되지 않은’ 것들의 행위와 흔적들이 남아 있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 흔적을 찾아내어 기술하는 역사가의 끊임없는 책무처럼, 작품 ‘그 자체’를 통해 그리고 다각적으로 해석하며 기획하는 전시방식을 통해 역사적 사실의 선별은 현재적 관심에 기초해 행해지는 사실을 넘어서거나, 그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안으로 발현 될 것이다. 따라서 선별의 정당성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기획자에 의해서도 끊임없이 증축되고 재해석되며 지평을 넓혀 가야 할 것이다.
2. 떠오르는 역사, 《노란 나비떼와 푸른 진실의 세월》 전시
그러한 역사에 대한 해석의 ‘울림’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작품 그 자체에서도 가능하지만, ‘하나의’ 작품을 어떻게 배치하고 ‘다른’ 작품들(작가 그 자신 안에서(개인전) 혹은 다른 작가들과의 관계 안에서(그룹전))간의 ‘놓인’ 방식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이에 장현우&김남용이 기획한 《노란 나비떼와 푸른 진실의 세월》 전시2)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다각적 시선을 제시했다. 1970년 개인의 양곡을 보관하던 남송창고(南松倉庫)는 장현우 감독의 오랜 설득 끝에 문화체육관광부의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면서 2014년에 증·개축되었다. 10여 년간 비워져 있던 남송창고는 2015년 9월에 담빛 예술창고로 개관하였다. 복합전시실로 쓰이는 왼쪽 건물과 문예카페(1층) 및 문화체험실(2층)로 쓰이는 오른쪽 건물의 면적은 각각 330㎡(100평)정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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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노란 나비떼와 푸른 진실의 세월》 전시 내부, 담빛창고 2층, ⓒ담양군문화재단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담빛 예술창고의 《노란 나비떼와 푸른 진실의 세월》 전시는 세월호가 침몰된 채 잊혀진 3년의 시간을 차곡차곡 이끌어내는 데 충분했다. 그리 크지 않은 면적임에도 불구하고, 장현우 감독과 김남용 큐레이터는 12명의 작가, 김재성, 문학열, 박일구, 박정용, 서법현, 송필용, 이재호, 임의진, 조정태, 한희원, 홍성담, 홍성민의 회화, 조각, 설치, 사진 등 작품 28점을 전시했다. 열 두 명의 시선만큼이나 전시 공간은 깊은 시간과 아직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의 응어리를 간직하고 있었다.
한희원 작가의 <4월의 매화>(2014)는 온통 어둡다. 검은 바람에 흩날리는 매화꽃잎들의 형태는 위태로워 보인다. 일반적으로 색색이 하얗고 분홍빛을 띠며 화려하게 만발하는 매화는 4월이 되면 온통 푸른 하늘에 흩날린다. 4월의 만개한 매화에 대한 작가의 기억은 침몰된 세월호와 중첩된다. 매 년 매화꽃이 자유롭게 펼쳐져 가는 4월의 푸른 하늘과 달리 검은 바다 속에 흩어져 있는 학생들은 사라졌다. 황폐해진 선박에 드리운 건 헐고 너덜해진 그들의 옷가지와 학용품뿐이다. 색색의 매화를 검은 빛과 대비해 묘사하고 있는 한의원 작가는 꽃다운 학생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어른들의 자책감과 죄책감으로부터 비롯된 힘든 심경을 검은 매화를 통해 드러낸다.
“나는, 이 늙은 나는 이처럼 아름다운 꽃 천지에 둘러 싸여 있는데 너희들은 이 꽃보다 젊은 너희들은 꽃처럼 피어나지 못하고 떠나는 구나”라는 작가의 시처럼, <4월의 매화> 속 검은 빛의 매화는 어둡고 거센 바람에 꽃잎이 으스스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아 불안하다. “다시 4월의 매화로 피어나/영원히 우리 곁에 있었으면”하는 작가의 슬픈 바람에도 불구하고, 검은 색의 흩날림은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가슴 속 먹먹함을 빗대어 화면을 가득 메운다.
우리는 박정용 작가의 <온전히 구하리라>(2014, 영상 및 혼합재료)에서 움츠려 앉아 있는 사람의 형상을 통해 ‘직접적’으로 검은 바다 속 아이의 모습을 직면할 수 있다.
움츠려 앉아 있는 사람의 형상은 박정용 작가가 팽목항 인근 바다에 수개월 동안 담가놓아 이끼와 따개비가 붙어 만들어진 것이다. 바다 속에 있었던 사람은 시간의 흔적으로 인해 녹슬어 있고, 이끼와 따개비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이 움츠려 앉아 있는 형상은 바다 속 세월호에 있는 아이들과의 시간을 공유하고자 한다.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흉측했던 형상의 오랜 시간의 흔적을 끄집어낸 작가는 직접 손을 대어 매만졌다.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어두운 물속에서 홀로 있어야만 했던 아이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움츠려 앉아 있는 형상에서 보이는 갈라진 틈으로 인한 균열은 우리 시대의 흔적이며, 인간이 만들어낸 우리의 이기심이다.
“(....) 어느 작가도 자신이 숨 쉬는 시대를 벗어나서는 살 수가 없다. 시대를 아파하고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시대를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 라는 작가의 노트처럼, 작가는 처절히 이 시대의 모습을 복원한다. 움츠려 앉아 있는 인간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깊고 어두운 그곳에서 차갑고 굳어진 그(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일으키고 싶을 것이다. 차갑고 굳어진 그(그녀)에게 다가가 어루만져 따사로이 안아주고 싶을 것이다. 그 힘든 과정을 녹여주고 싶지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그(그녀)는 그토록 외롭게만 앉아 있다. 그렇게 앉아 있는 그(그녀)는 시간이 지나 더욱 그 균열이 갈라지며 상처 입은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그녀)를 ‘이기적이게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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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이재호, <기도하는 아이>, 2017, 닥종이에 금박(순금),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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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흔적들과 감정에 대한 작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응어리진 시간의 흔적들을 치유하기 위한 작품과 조우한다.
이재호 작가의 <기도하는 아이>(2017)는 304명의 어린 아이들이 기도하는 모습이다. 한 아이의 형상을 제작하기 위해 작가는 좌우의 석고틀 위에 박지로 포장하며 손끝에 금박(순금)을 붙인다. 사흘 동안 1명~5명의 기도하는 아이들을 제작하는 작가는 세월호 사건에서 희생당한 자들에 대한 인간들의 바람을 함축한다. 더 나아가 작가는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 이후로 세계의 수많은 사건들 – 난민, 전쟁, 기아, 테러 등 - 속에서 이유 없는 희생과 인간의 죽음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영감을 받은 작가는 자신의 오랜 고민과 가슴 속 바람을 실현화시킨다. 작가의 오랜 고민은 아이의 머리에 붙어있는 금박 ‘퍼즐’에서도 알 수 있다. ‘퍼즐’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면’으로 풀어내는 <알 수 없는 표정>(2014)에서 나오는 모티브이다. 자신의 과거의 이야기를 ‘맞춰나가는’ 퍼즐이 아니라, 작가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변화되는 자신의 모습을 ‘떨어져나가는’ 퍼즐, 그리고 ‘찢겨져 나가는’ 종이의 흔적들을 가지고서 치유와 바람의 요소들을 채워나간다. 작가는 자신의 과거 상처를 치유하며 새로운 바람을 형성해 나갔던 것처럼,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모습을 통해 어른들 역시도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매개체로서 어린 아이들을 제작한다.
라틴어에서 금을 뜻하는 ‘aurum’은 헤브라이어의 빛을 뜻하는 ‘or’와 적색을 뜻하는 ‘aus’에서 연유되었다. 이러한 어원으로 인해 프랑스어는 금을 ‘or(d’or)’로 표기한다. 독일어의 ‘gold’ 역시 산스크리트의 빛을 뜻하는 ‘jvolita’에서 연유했다. 금이 화폐단위로 쓰이면서 본래의 뜻이 퇴색되었지만, 작가는 ‘순수한 것 그 자체’, ‘빛’과 같은 금의 본래적 의미를 강조하며 기도하는 손끝에 금을 붙인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한 명의 아이에게 비쳐진 LED 불빛은 어둠에서 시작된 ‘하나의’ 빛이 무릎 꿇고 기도하는 304명의 아이들을 가득 채우도록 ‘시간의 간격’을 두며 변화한다.
아이들 위에 있는 배는 침몰하는 세월호를 상징하며, 뜯겨진 부위는 사람들이 그 곳을 통해 빠져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형상화되었다. 한 아이 앞에 있는 노란 종이배는 2015년 <storypaperboat>의 시민 참여로 제작한 약 200개의 노란 종이배의 형상이다. 따라서 작가는 수많은 어린 아이의 형상들이 소원하는 모습을 통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기도하는 아이들을 아래 품어져 나오는 불빛은 어두운 창고 안에서 은은한 빛을 발현시키며 관객의 바램을 함께 유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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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인양된 세월호 선체>, ⓒ유경근 집행위원장 얼숲에서 갈무리, 원본 사진 회전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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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로 떠오르는 세월호 선체의 모습은 흉측했다. 이전의 풍요롭고 거대한 풍채를 뽐내던 세월호는 66개 줄에 매달려 누운 채로, 140여 개의 구멍이 뚫리고, 녹슨 선체의 몰골로 드러났다. 지난 3년의 시간 속에서 인간의 행동으로 인해 문드러지고 소외당한 결과였다. 세월호는 소리 내어 울고 싶지만 말문이 막혀 표출할 수 없는 내면의 먹먹함을 불러일으킨다.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는 모든 예술 영역에서 보이는 시적인 은유로서만 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모든 의문들을 여전히 간직한 채 떠오른 선체를 통해 땅을 밟고 있는 사람들이 감췄던 것들을 또 다른 사람들의 힘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문학과 미술의 만남,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기까지의 고민의 성찰로서 기록된 작가들의 은유적 표현들은 이 사건을 다양한 시각에서 유추하고, 공감하며, 발현시키는 데 충분했다. 더불어 담빛 창고의 전시는 지나간 시간들,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들, 그리고 들춰내 보이지 않은 문제들, 나아가 미래의 바람까 지 관객이 통찰할 수 있도록 짜임새 있는 전시구성을 보여준다. 작은 담빛 예술창고 속에서 퍼지는 은은한 침묵과 먹먹한 울림은 여전히 우리의 숨결에 내재되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3. 역사를 바라보는 눈, 그리고 재구성의 방법
달빛예술창고에서 <똥의 탄생 1>(2016), <바리깡-간코쿠야스쿠니>(2014), <달밤>(2016), <내 몸은 바다-5>(2017)을 전시한 홍성담 작가는 광주시립미술관의 초대전으로 《홍성담 ‘세월오월’》(3월28일~5월11일, 2017년)전이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1·2전시관에서도 열렸다. 이 전시에서 홍성담은 걸개그림 등 작품 23점을 전시했다. 홍성담 작가가 오랜 시간 세월호와 관련된 다수의 작품들을 제작했다는 점, 그리고 <세월 오월> 작품 철회(2014년 박근혜 정부 외압)로 인한 기획초대전 개최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크다.
<세월 오월>(2014) 3) 을 시작으로 홍성담 작가의 대다수 작품들은 그가 언급했듯이 “천천히 물에 잠기며 아이들이 죽어간 세월호 참사는 국가폭력이자 학살”임을 주장한다. 물론 그가 오랜 시간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제작한 작품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비극과 국가 폭력에 대한 관객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충분했다. 그러나 더욱 정확히 보자면, 세월호 사건은 국가의 과실(폭력)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낯 즉, 국가의 무능력, 관료주의의 이기심, 직업의 이기주의(선장), 자본주의의 민낯(화물 증축 및 유병언), 국민 개개인의 이기심(여가생활 및 일상의 지속) 등을 여실히 드러낸다.
따라서 광주항쟁의 경험과 물고문에 대한 개인적 기억과 세월호의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교차시키며 그려낸 이십 여의 작품들에 대해 기획자는 세월호 사건의 사유의 장을 넓힐 수 있는 전시 배치 및 구성, 작품 내용의 획일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민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시립미술관에서 홍성담 작가의 23점의 작품들은 ‘하나의’ 시각에 의해 재구성되어 풀어내고 있다면, 담빛 예술창고에서 홍성담 작가의 작품들은 세월호를 이해하고 ‘재현된 시각들 중 하나’의 요소로서 관객에게 작용한다. 즉, 홍성담 작가의 작품들이 한 공간에서 유사적인 형태로 보이는 것보다 ‘담빛 창고’에 들어갈 때,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감정은 다른 작가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관객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훨씬 흥미롭다.
《노란 나비떼와 푸른 진실의 세월》 전, 《홍성담 ‘세월오월’》 전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시간을 해석하고 재현하고자 했던 《열흘간의 나비떼(가칭)》 전시는 5·18민주평화기념관을 중심으로 미완성의 상태로 관객에게 개방했다. 5·18과 관련된 아카이브 형태의 전시의 변화가 새로워지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거라는 생각과 이 역사적 사건을 미화하거나 왜곡하지 않는 상태에서 대중성을 획득한다는 것이 여전히 광주에서조차도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던 터였기 때문에, 사실 이 전시에 대한 나의 기대는 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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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전시장 외관>, 특히 건물의 내부의 하얀 벽은 시간의 모든 흔적을 감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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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전시 내부 모습>, 전시는 대중의 공감대를 형성해 내는 데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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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의 완성으로서의 그 작업은 현재 광주의 5·18에 대한 인식과 5·18재단의 모습, 그리고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에 대한 다양한 측면들이 진행되고 있는 그 ‘과정’ 자체의 모습, 어쩌면 이러한 미완성이 바로 하나의 작품인 듯 현재의 광주 그 자체를 보여주는 듯했다. 5·18 민주화 운동의 열흘간의 이야기를 서사구조에 따라 22개 구역으로 전개시키고자 한 《열흘간의 나비떼(가칭)》 전은 2013년 황지우 시인을 책임연구원으로 초빙해 기획되었고, 이를 전시로 구현하였다. 한 달여 동안 임시 개방했던 이 전시는 옛 전남도청을 비롯한 보존 건물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공간적 특성을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였다. 특히 전시 내용 및 기술적인 협업으로 대중적인 미학적 공감대를 형성해 냈다.
그러나 나의 가슴 한편을 아리게 했던 것은 이 사건을 회상하는 전시내용보다도 하얗게 변해버린 벽의 흔적들이었다. ‘5·18민주평화기념관’으로 활용된 내부의 노출된 철골 프레임과 하얗다못해 너무 백지장 같은 벽의 색은 시간의 흔적을 담아내기에는 너무 유치했다. 투박한 듯 내부의 벽을 그대로 살려두고 보존하는 방식으로 지속시키고자 하는 고민은 사라지고, 깨끗이 잘 정돈된 하얀 벽, 그리고 공간을 먼저 재정립하고 전시를 구성 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이 형태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기억과 역사의 흔적을 보유하고자 하는 도시에서 길과 건물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역사를 제거하는 이러한 형태는 독일 베를린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데, 종종 불편한 기억은 은폐하고 편한 기억을 드러내는 작업으로 나타난다. 기억을 보존하기 보다는 오히려 망각시키는 이러한 행태들은 바로 시간의 흔적을 담아내는 건물의 내벽이나 건물 그 자체의 사라짐을 통해 발생한다. 따라서 광주의 도시가 ‘기억의 장소(lieux de mémoire)’로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는 이러한 작업 방식을 통해 과연 도시 자체의 역사성을 주목하며 ‘유네스코’의 도시로서 광주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
4.
5월이 되면, 우리는 또 다시 한국 사회의 민낯과 흔적들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모순과 이에 대한 예리한 분석 방안으로서, 또 이의 극복을 위한 실천적 전략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예술가들의 작업, 그리고 이들을 규합하며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고자 했던 《노란 나비떼와 푸른 진실의 세월》 전은 역사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하기 위한 돌파구를 찾는 노력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시는 단순히 미술사적 척도로서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전시는 미술사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동시에 ‘현재의’ 정치적 실천 행위4)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그러한 모순적 관계 안에서 사회적 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이고 실천 지향적인 입장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건물 혹은 장소의 역사적 의미 및 특징을 되새기며 공간적 특성을 반영한 전시 구성, 그리고 대중적인 미학적 공감대를 형성해 낼 수 있는 전시 내용을 더욱 고민할 때 가능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사고가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더불어 새로운 역사적 현실에서 아직 무엇인가의 진리를 끌어낼 수 있게 해주며 새롭게 제시되는 개념들과 설명을 발전시키면서 다듬어갈 수 있는 이론적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대의 역사가가 되기 위해 나는 장 폴 샤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년~ 1980)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작가의 기능은 인간의 가치를 억압하고 파괴하는 모든 기존 질서체계를 폭로하고 고발하는 것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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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역사적 예술이란 그 시대의 본질에 의한 것이다. 한 시대는 그 시대를 표현하며, 미래를 위해서는 그 시대를 다시 재현하는 그 시대의 예술가를 가져야 한다. 한 시대의 역사는 그 시대로 끝나면, 그 시대를 표현하는 그 시대의 대표자들도 그 시대와 함께 사라진다.” 19세기 자신의 사회에 대한 프랑스의 리얼리즘적 시각(샹플뢰리, 구스타브 쿠르베, 오노레 도미에 등)은 이후의 프랑스 예술·비평계에 뿌리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에드워드 마네 역시 “그것은 그 시대에 존재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것을 그려야만 한다.” 《Il faut être de son temps et faire ce qu’on voit.》고 선언했다. 이후 비평가 피에르 레스티니(Pierre Resteny)는 누보 리얼리즘 운동을 주도하며 “실재에 대한 새로운 접근(Les nouvelles approches perceptives du réel)”을 시도하며 작가들을 규합했다. 프랑스에서 아방가르드 정신과 사회 비판적 태도는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예술가, 문학가, 그리고 비평가들의 상호 작용에 의해 보완되어 왔다. 이들은 공식적 규범에 대해 저항해 왔으며, 자유로운 시대적 표현을 진행시켜왔다. 이러한 활동은 때때로 ‘새로움’에 대한 미학적 기법의 전략적 사용과 시대의 ‘정치적’ 표현 사이에 다양한 실험주의를 양산해냈다. 정도의 강약이 있겠지만, 우리는 19세기 이래 프랑스 예술 비평과 화단에 지속적으로 등장해오며 프랑스 특유의 예술 문화를 형성해 오고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린다 노클린, 『리얼리즘』, 미진사, 1997, p.29 : Antonin Proust, Edouard Manet: Souvenirs, Caen : L'Échoppe, 1996; Françoise Cachin, Manet: ‘J’ai fait ce que j’ai vu’, Paris, Gallimard: Réunion des musées nationaux, 1994, p. 176: Pierre Restany, Le Nouveau Réalisme, Paris : Union Générale, 1978, 참조.
2) 장현우 총감독, 김남용 큐레이터 기획, 《노란 나비떼와 푸른 진실의 세월담양의 달빛예술창고》, 3월 31일~5월 15일, 2017년.
3) 미술관에 들어서기 전, 중앙에 설치된 이 작품은 전시장 내 <세월 오월> 옆의 작품 수정본 2점 - <닭대가리1>과 <조종자들>을 함께 볼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했다는 이유로 2014년 광주비엔날레 때 전시되지 못한 <세월 오월>은 가로 10.5m×세로 2.5m 크기의 대형 걸개그림이다. 이 작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허수아비’에서 ‘닭’의 형상으로 수정했지만, 계속 전시를 유보 당하자 작가가 2014년 8월 24일 작품을 자진 철회했던 작품이다. 그림의 중앙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핵심적 역할을 했던 ‘5월 어머니’들이 침몰한 세월호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다. 그 옆의 박근혜 전 대통령(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 전원일치로 탄핵)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로 묘사되었다. 작품 오른편에 그린 일본군 위안부 내용은 미국 전 국무부장관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Armitage)가 작성한 보고서를 소재로 제작됐다. 작가는 한·미·일 군사동맹을 위해 미국이 강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이끌어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맺은 한일협약, 현재의 사드배치도 미국의 힘이 작용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4) 나는 기존의 ‘정치적’이라는 부정적 의미에서 벗어나 ‘미시적’이고 ‘예술적 저항 의식’으로서의 정치적 태도에 주목하고자 한다. 즉, ‘정치 운동’의 성격으로서가 아니라 미시적, 국지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개개인의 정치적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어떤 ‘자세’ 및 ‘태도’의 한 형태를 지칭한다. 나는 종종 이를 “예술적 실천(la pratique artistique)”이라고 명명했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태도는 관객에게 사회를 ‘파악’할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며, 다양한 지식의 범주와 담론 안에서, 그리고 실제적인 사회관계 속에서 객관적 위치를 ‘체험’하고 ‘경험’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5) 장 폴 샤르트르, 『지식인을 위한 변명』, 박정태 역, 이학사, 2007, 참조. 이 저서는 1965년 9월과 10월에 일본에서 행해진 사르트르의 강연을 번역한 책이다. 샤르트르는 먼저 지식인이 역사적 주체로서 자신의 소명을 인식하고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바를 명백히 언급한다. 더불어 지식인의 비판적인 기능의 수행을 담보하는 올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이는 사회에서 가장 소외받는 계층인 피지배계급의 입장에 서거나 입장을 대변할 경우에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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